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준선 May 26. 2023

심리학의 역사: 중세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넌 죽어

중세시대에는 기독교가 곧 생활양식이었다. 

그래서 신이 만든 인간의 모습, 

즉 신이 제시하는 인간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중세시대에서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는 확고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신들과는 다르게,

중세시대의 신은 완전무결하고 유일한 신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신의 뜻을 거스르면 엄청난 형벌을 내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중세시대의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금기시되는 행동이었다. 

신이 내려준 십계명 같은 삶을 추구하는 것에 의구심을 느끼는 것이었으며,

신의 대리인인 교황과 왕에 대한 도전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을 수 있지만, 

이 격언이 몇 천년 간 이어져 내려오는데 이유가 있다. 


이 말의 뜻은 바로, 

신이 정해준 인간의 모습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의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하겠다는 말이다. 


즉, 신과 나를 구분한다는 당돌한 외침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내 마음이 원하는 것’, 'desire', ‘욕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죄를 짓는 듯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전 세계에 기독교의 생활양식이 오래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오래 가지 않고 조선시대만 봐도 

현재의 우리의 사고방식과 많이 다르다. 


더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시대까지 내려가면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하고 양성 간의 차이마저 없는 기록이 많다. 




개인의 마음에 대한 거세는 역사 속에서도 오래 이어져 왔다.

중세 시대나 특히 섬나라에서는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난 대로,

너의 아버지가 하는 일을 물려받고, 

그 일을 다시 너의 자식이 물려받으렴.

노하우도 축적되고 좋지 않니?"

중세 시대 성의 주인은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성내에 분란이 생기지 않고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대표적인 섬나라인 영국과 일본은

아직도 왕권과 계급이 유지되고 있으며

자신의 성(Last name)이 직업을 뜻한다.

하나의 나라를 큰 성이라고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기독교를 폄하하거나 평가하는 글이 아니다. 

단지가 역사가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심리학의 역사: 고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