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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06. 2024

아빠 되면 행복해요?

그럼요. 기쁨도 피곤함도 모두 풍년입니다.

2024. 2. 6. (화)


'하아..'


인천으로 이사하고 나니 통근시간이 늘어났다. 편도 1시간 반. 통과하는 지하철 역만 무려 30개다. 칼퇴근 후 집에 와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치이느라 몸은 녹초가 되어 있다. 


집에 들어서면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지친 아내의 미소와 더불어, 오랜만에 본 아빠를 보고 신난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서둘러 씻고 허겁지겁 저녁을 먹다 보면 첫째 꿀떡이가 '같이 놀자'며 손을 잡아끌고, 둘째 찰떡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기어이 눈을 마주치고는 '배시시' 웃어준다. 


그렇게 두 아이와 뒤엉켜 한 시간쯤 더 놀다 기저귀를 갈고, 양치를 시키고, 함께 잠자리에 누워 동화책을 읽으며 하루가 끝난다. 아내는 내가 온 그 잠시 동안 씻고 잘 준비를 하며 겨우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 1월 나의 복직 이후, 한 달여간 매일의 일상이다. 


솔직히,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퇴근한 아빠 쟁탈전 (Feat. 저기..아빠 밥 좀..)



스포츠카 v. 아빠


회사에서는 재미있게도 내가 팀 막내이면서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부모'이다. 


다른 동료 변호사님은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마음껏 즐기시는 중인데, 지난달에는 여자친구와 일본 여행을 다녀오시더니 심지어 이번 달에는 유명한 스포츠카를 계약하셨단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드림카를 계약했다고 좋아하시기에 '한국에 달릴 도로도 없는데 스포츠카는 무슨' 하며 괜스레 핀잔을 줬다. 부러워서 아니야 부럽지 않아 난 빠른 차 필요 없어 


사실 동료를 보며 부럽다기보단, 이제는 기억도 아득한 '아이가 없었을 때의 삶'을 문득문득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퇴근하고 아내와 수다를 떨며 저녁이나 야식을 먹고,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가끔 영화관도 갔다. 주말에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과자와 음료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며 각자 다니던 회사 이야기도 하고, 친구들 이야기도 하며 키득대다 오붓하게 집에 오곤 했었다. 관심사가 참 다양하고 사소했다. 새로 생긴 빵집, 회사 근처 맛집, 친구의 결혼이나 연애 소식 등등.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은 꿈에도 그릴 수 없는 일상들이다. 


문 닫고 볼일이나 볼 수 있으면 다행이랄까.


그래. 아주 잘 크고 있다. 잘했다.



그래도 아빠.


그래도 난 스포츠카 오너보다 아빠가 되는 것이 좋다.


잠옷 바람의 아빠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엉덩이 한쪽씩 걸쳐 놓은 채 각자 노는 두 아이를 양손으로 쓰다듬다 보면, 녹아내리던 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린다(?). 좋은 건 좋은 거고 녹아내리는 건 어쩔 수 없...  


주변에서 '아빠가 되니 행복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아이가 없을 때와 있을 때의 행복의 모양이 조금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없을 때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는 행복이 있었다면,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상황적으로 주어진 게 별로(아니 어쩌면 '거의') 없는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웃음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몸은 피곤하고 가끔은 떼쓰는 아이들의 모습에 막막할 때가 많지만, 결국 그 모든 피곤함과 감정들을 사소하게 만들 정도로 아이들은 신기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를 기쁘게 한다. 그 기쁨을 함께 누리며 아내와 나도 더 돈독해지는 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사실 행복의 정도를 굳이 풍성함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아이들이 없을 때보다 아이들과 함께인 요즘이 더 풍성하다. 물론 빡침과 피곤함도 함께 풍성하고 그냥 육아는 다 풍성하다 풍년이다 풍년.   


도로를 달리는 화려한 스포츠카? 난 오늘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는 우리 기저귀 6호와 5호가 더 좋다. 


사고뭉치 똥강아지들 (공기청정기 좀 그만 괴롭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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