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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4. 2024
꽃 같은 육아
여행과도 같은, 그래서 출발해야 보이는 것들
2024. 3. 14. (목)
"힘드시겠네요"
새벽 6시 반.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직장위치를 듣고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왕복 출퇴근 시간은 총 3시간. 새벽에 나가 저녁 무렵 들어오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아이들 손에 이끌려 네버랜드(꿀떡이가 놀이방을 부르는 말)로 끌려들어 가거나 기저귀를 갈고 아이들을 씻기다 함께 잠이 든다. 그렇게 또 새벽 6시 반. 나가는 길에 분리수거 박스와 음식물 쓰레기는 덤이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이가 없을 때, 특별히 결혼 전에는 퇴근 후에 몇 시간이고 누워만 있던 나였다. 가족들이 '나무늘보'라고 부르던 내가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아갈 줄은 나도 몰랐다. 밥 차리기가 귀찮아서 밥도 안 먹고, 씻기가 귀찮아서 외출을 안 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밥을 차리고 누군가를 씻겨서 데리고 나간다니.
"행복하시죠?"
주변에 생각보다 딩크족(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부부나 커플)이 많다. 당장 직장에서도 우리 팀에서 육아를 하는 사람은 나뿐인데, 사람들이 피곤해 보이는 나를 나름 위로(혹은 놀림)하겠다며 건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행복하다.
'육아, 마치 여행길 같은'
육아를 생각하면 예전에 아내와 떠났던 고성 여행이 생각난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아내가 고성에서 라벤더 꽃 축제가 있다며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꽃? 여행? 사실 나는 여행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심지어 꽃을 보러 가는 여행이라니? 하지만 아내(당시 여자친구)가 하도 졸라서 결국 아침 일찍 여행길에 올랐다. 심지어 주일에 교회 가야 해서 토요일 당일치기로.
여행은 힘들었다. 18년 된 아반떼 XD를 타고 200km가 넘는 길을 가야 했다. 토요일이라 차도 많고 휴게소마다 사람이 바글거렸다. 사실 혼자였으면 첫 번째 휴게소에서 짜증 내며 라면만 먹고 돌아왔을 텐데, 들떠있는 아내를 보며 모든 것을 체념하며 갔던 길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고성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생각보다 꽃이 너무 예뻤다. 흐드러지게 핀 보라색 꽃들이 산을 배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도 활짝 웃으며 좋아하고, 나 또한 처음 보는 광경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오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다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 꽃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오는 길에 바다도 들러서 발도 적시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다.
지난 3년 간 두 아이를 키우며 느낀 육아도 결국 여행길 같지 않을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사실 난 결혼 전부터 아이를 몇 명을 낳겠다거나 어떻게 키우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꿀떡이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 엄청 기쁘면서도 막막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빠라니. 딸기도 못 씻어먹는 내가 어떻게 애를 키울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한 육아는 실제로 힘들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허겁지겁, 집에서는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봤다. 아이가 이유를 모르게 떼를 쓰기도 하고, 혹시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힘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상상치도 못하게 즐겁고 행복했다. 아이가 처음 웃고, 처음 밥을 먹고, 처음 뒤집고, 처음 서고, 또 처음 걷고. 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아내와 내 삶을 빠짐없이 가득 채웠다. 그렇게 힘든 육아를 몰고 온 이 아이들 덕분에 요즘 매일 웃고 또 웃는다.
요즘도 아내와 가끔 고성 여행길을 얘기하며 웃는다. 아내는 심지어 여행 직전 직장 일로 엉엉 울기도 했었다. 눈물 자국이 채 지워지지도 않은 채로, 포르셰도 아닌 아반떼를 타고, 사람과 차가 바글거리는 토요일에 떠난 여행은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행복으로 남아있다. 예쁘게 핀 꽃, 좋은 날씨, 그리고 푸른색 바다도 좋았지만, 그 여행이 유독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어쩌면 당시엔 힘들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 진한 추억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석양을 보며 아내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오니 2시간 운전이 짧게 느껴졌었다. 육아를 하는 우리의 모습도 비슷한 것 같다. 육아는 분명 힘들지만, 동시에 그 모든 힘든 기억들을 추억으로 바꿀만한 힘이 있다. 우리의 고성 여행이 그랬듯, 육아도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고성 여행이 그랬듯, 육아는 행복하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래서 이 힘들 것을 다 알아도, 다시 여행길에 오를 만큼 말이다.
고성 여행 후 집으로 돌아오던 길
행복해...무겁지만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