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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pr 08. 2024

아빠를 누리다

희생보다 큰 행복이랄까

2024. 4. 8. (월)


처음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놀람'이었다.


요즘 SNS에 미혼 젊은이들(?) 글을 보면 남자친구가 '임신했다'는 말에 감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당장 기뻐하는 기색이 없다며) 분노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솔직히 애 둘을 키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들이 뭘 안다고 즉각 기뻐할 수 있을까 싶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너 서울에서 청약 당첨됐다'는 소식을 전해도, 즉각적인 첫 감정은 비현실적인 당첨확률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놀람'일 것이다. 서울에 내 집이 생긴다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앞으로 살아가며 조금씩 깨달아 나갈 뿐.


지난  인생에도 여러 행운이 깃들어 왔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아빠로서 느끼는 행복에 비할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그 아빠 됨을 누리는 것은 내가 상상해 본 적도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다.


사실 '왜 행복하냐'는 질문에 막상 생각해 보면 딱히 엄청날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일상들인데도 아이들로 인해 마음이 가득 차고 몽글몽글한 어떤 감정이 있다. 아이가 뛰어와서 내 품에 폭 안길 때, 자고 일어났는데 군고구마처럼 따듯한 아이의 발바닥이 내 볼 위에 얹혀 있을 때, 주말에 거실 바닥에 온 가족이 누워 판다처럼 뒤엉켜 굴러다닐 때 등등.


아빠 언제와 I 아빠랑 결혼할거야 (뒤에 넘어져있는, 진짜 아빠랑 결혼한 엄마) I 자고 일어나면 항상 굴러와서 붙어있는 딸내미
퇴근 후 색칠 삼매경 (Feat. 참견하는 돌잡이)


첫째 아이가 코로나가 가장 심할 때에 우리 부부를 찾아온 덕에, 나는 꿀떡이의 출생과 함께 외부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집을 몇 년 간 반복하다 덜컥 우리를 찾아온 둘째 아이 덕에, 아예 아빠 육아휴직을 쓰고 1년 간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매 순간 쉽지 않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수백 번을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힘들었던 기억과 고민들에 비교도 못할 만큼, 두 아이가 아빠인 내게 주는 행복함이 훨씬 컸다. 아이들과의 지난 시간들에서 내가 몸을 갈아 희생하며 육아를 했다기보단, 오히려 아빠로서 아이들을 실컷 누렸다. 아이들을 향한 아빠로서의 내 사랑도 컸지만, 오히려 아빠를 향한 아이들의 사랑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절대적이었다 (물론 엄마만큼은 아니지만-섭섭-). 


두 아이가 태어나고 네 가족이 된 우리는, 티격태격 시끌벅적 서로 사랑하는 법을 함께 배워가고 있다. 두 남녀의 사랑으로 시작된 우리 가정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며, 남매가 서로를 사랑하고, 또 부부가 부모가 된 서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할 땐 한 가지 사랑의 모습이었던 우리 가정이, 두 아이가 태어난 지금은 다채롭고 다양함 사랑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채로움 안에서, 나는 매일 아빠임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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