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님과 밥을 먹었다.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엘리트 중에도 초엘리트에 해당하는 변호사님이 하신 말 하나가 기억이 난다.
"사실 변호사 일이 별 거 없잖아요."
'변호사님이 천재라서 그렇게 느껴지시는 거 아닐까요'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올 뻔하는 걸 간신히 집어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맞는 것도 같다. 법조계 특유의 폐쇄성, 그 산업에 들어가고자 하는 인력풀의 우수성, 그리고 (이젠 많이 유효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은 유효한) 전문가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인력풀의 희귀성에 가려지긴 해도, 사실 막상 업계에 들어가서 보면 엄청나게 숭고하거나,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엄청나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일상은 아니다. 물아래 발버둥 치며 우아한 척하는 오리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더 솔직하게 얘기하면,인력풀에서 상대적으로 덜 똑똑한 내 입장에선 '저렇게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고작 저런 일을 하고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본인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하고).
나는 대체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니 아득하다. 그간도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적성이냐'라고 묻는다면 확신이 없다.
지금 회사에서는 나름 인정을 받는데,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려니 끝이 없다. 지금보다 더 큰 회사로 가서 인정을 받고, 더 큰 로펌(빅펌)에 가서도 인정을 받고,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으로 넘어가 또 인정을 받고, 그러다 '세계적'이라는 칭호를 받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오히려 잠이 안 올 것 같은데 (내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변호사님들이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럼 내 행복은 어디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한창인 30대 중반에 하는 걸 보면, 부모님 말씀이 맞다. 나는 여전히 덜 떨어졌다. 인정.
그래도,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나는 집에 갈 때 행복하다. 일을 하며 크고 작은 희열을 느끼고, 사람들의 칭찬과 신뢰를 받으며 또 크고 작은 만족감을 느끼지만, 결국 내 두통이 없어지고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내 입이 역삼각형 세모가 되는 순간은 퇴근길이다. 한심하지만 사실이다. 30대 중반의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굴러(?)다니고 있는 집으로 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적어도 올해는, 내 행복을 찾아 최대한 후다닥 집에 가보려 한다. 회사에서의 열심의 화살표를 '혼신'이 아닌 '성실'로 조정하는 과정이랄까 (이것도 얼마나 힘든데 흥.'일상의 성실'은 '평범한 행복'이라는 말만큼이나 힘든 것이거늘).
계산할 때 보니 오늘 변호사님과 먹은 밥값만 30만원이다. 너무 고급지고 맛있는 레스토랑이었고, 나눈 이야기도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래도, 나는 아내와 3만원짜리 치킨 먹으며 낄낄대는 게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