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8. (화)
이불 정리
주말에 이불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었다. 평생 내 이불도 정리 안 하던 내가 다른 이들의 이불을 정리하다니. 어릴 적 이불을 정리하시던 엄마 뒷모습에 '어차피 다시 덮을 이불을 왜 정리하냐'며 괜스레 투덜대던 철없는 아들이었는데 말이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던 막내아들, 별명이 나무늘보였던 나는 어느새 개미처럼 부지런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새벽을 깨우고 저녁을 접으며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빈자리는 둘째 아들 찰떡이가 이어받아 틈만 나면 누워 재끼고 있다 (부들부들).
아내와 결혼하기 훨씬 전에, 엄마와 산책을 하다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나 같은 게 누군가의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혼잣말 같은 질문에, 엄마는 가만히 걷다 대답하셨다.
"넌 좋은 아빠가 될 거야. 자상하니까."
부모의 뒷모습
육아라는 게 시기마다 다르다곤 하지만, 결국 주욱 펼쳐놓고 보면 '아이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며 자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랬던 아이가 더 커가며 점차 사회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 부모의 영향보다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연스레 독립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자라남이고 또 교육이 아닐까?
자상했던 우리 엄마, 든든했던 우리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그렇게 아빠의 든든함과 엄마의 자상함을 조금씩 가져온 듯한 부모의 모습이 되었다.
내 평생에 있어 가장 큰 교육은 어찌 보면 부모의 모습 그 자체였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애써 달리 표현하지 않아도, 큰 울타리 같은 부모님 등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누리던 그 뒷모습이 부모가 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의 모양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모양과 닮아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거나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나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떤지. 결국 이 아이들은 이 모습을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녀 교육은 부모 스스로 돌아봄에서 시작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