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아닌 알아가기
2023. 1. 10. (화)
오후 느지막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첫째 꿀떡이가 낑낑대며 나무 블록을 들고 와 발밑에 스윽 들이밀었다. '블록 쌓기 놀이를 하자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아빠랑 하나씩 쌓아볼까?'라고 제안하여 시작된 놀이었다. 내가 아래에 블록을 놓으면 아이가 그 위에 블록을 쌓는 것을 반복하는 단순한 놀이였는데, 아이가 계속 블록을 조금씩 엇갈리거나 삐뚤빼뚤 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순서에서 "아가. 이렇게 쌓으면 높이 쌓지를 못하지~! 이렇게 해야 높이 쌓을 수 있는 거야"라며 조금씩 아이의 블록을 조정(?)해주곤 했다. 그래봐야, 아무리 조정을 해도 아래에서부터 삐뚤빼뚤 쌓은 블록 산은 금방 무너지곤 했다. 그런데, 산산조각 난 블록들 앞에서 꿀떡이는 가장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봐. 열심히 쌓은 블록이 방금 무너졌다고. 산산조각 났다니까?
첫 번째 실패(?) 이후에도, 아이는 삐뚤빼뚤 블록을 쌓아 올리고 나는 어떻게든 높이 쌓기 위해 아이의 블록을 조금씩 조정하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던 찰나에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이 놀이에서 단순히 '높이' 쌓는 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는 블록이 쌓여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균형을 잃고 산산이 흩어지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현상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마룻바닥에 처음 쌓아 올린 그 주춧돌, 첫 번째 블록의 존재를 신기해했고, 그 위에 차곡차곡 올리는 그 과정에 집중했으며, 결국에는 휘청이다 넘어지는 그 블록들의 모습에 즐거워했다. 블록을 한번 집었으면 아이 키보다는 높이 올려야 한다는 실적주의(?)에 찌든 아빠와는 달리.
흔히 우리 어른들이 아이와 '놀아준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기 시작하며 '놀아준다'는 말이 맞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의 놀이는 누군가 해야만 하는 업무가 아니라, 그 아이를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가장 큰 기회가 아닐까. 아이가 놀이에 반응하는 방식, 상황과 물질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방식은 가끔 어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창의적이다.
지금 이렇게 무거운 블록을 질질 끌고 와서 '놀자'라고 하는 이 시기부터 함께 놀며 기회 닿는 대로 아이를 알아가야겠다. 그리고, 이제 두 돌도 안되었긴 한데 10여 년 후에 학교 들어가면 내가 같이 놀자고 해도 안 놀아 줄 생각 하니까 벌써부터 내심 섭섭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