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애가 안 오겠다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2023. 1. 14. (토)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우리 가족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내가 점심시간 등을 통해 '아이 없이'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내가 오전에 약속 장소로 떠나면 내가 아이를 온전히 보게 된다. 아이와 같이 놀다가 기저귀를 갈기도 하고, 점심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약속이 길어지면 오후 낮잠도 재우는 것이다. 당연해 보이지만 육아휴직 전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첫째가 엄마 외에는 누구와도 낮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1년 넘게 모유 수유를 했다. 중간에 아내가 아파서 항생제를 써야 하는 상황이 있어서 모유 수유가 끝났지만, 아니었다면 아내는 2년 넘게 모유 수유를 하겠다고 하던 터였다. 또 첫째 출생 전후로 코로나가 급격히 악화된 터라, 첫째는 2년 가까이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고모 정도 외에는 타인과 교류해보지 못한, 소위 '엄마 껌딱지'가 된 것이다.
나도 첫째가 태어나고 평일에는 퇴근 후 바로 집으로 향해 아이 목욕과 놀이를 전담하고 주말에는 친구나 지인과의 약속을 잡지 않고 온전히 육아에 참여하는 등 어느 정도는 아이와의 애착을 형성하려 노력했지만, 유독 낮잠이나 밤잠 시간만 되면 아이가 가까이 오지도 않는 굴욕을 경험하곤 했다. 잘 놀다가도 낮잠 시간만 되면 엄마에게 조르르 달려가는 첫째가 신기하면서도 야속하기도 했다.
밤잠은 엄두도 안 나고, 일단 낮잠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아이가 싫어하다 못해 엄마 데려오라고 울고 난리를 치니 나도 답답해서 아내한테 하던 말이 있다.
"아니, 애가 안 오겠다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렸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24시간을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하다 보니 아이도 내가 존재하는 일상에 빠르게 적응했다. 아이를 씻기거나 목욕하거나 놀아주는 일을 전담하는 동시에 문화센터나 육아센터 또는 놀이터에 갈 때 아내보다는 내가 들어가서 함께 하곤 했고, 아내가 낮잠을 재울 때마다 전략적으로 주변에서 계속 목소리를 들려주는 등 서성거리기도 했다.
아이와의 애착 형성이 뭐 특별한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빠라는 존재와의 '신뢰'를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빠와 함께해도 세상 무너지지 않고 재미있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어필(?)을 하고자 했다. 물론, 잠들 때 유독 예민해지는 첫째가 아빠는 저리 가라고 손찌검(?)을 해도 꿋꿋이 버텨내야 했다..(눈물 스윽)
결국, 휴직을 한 지 일주일도 안되어 아이와 단 둘이 낮잠에 성공하게 되었다.
찡얼대던 아이가 내 눈썹을 스윽스윽 만지며 잠이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던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깊게 잠이 든 아이가 혹시 깰까 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꼼짝없이 석고상처럼 누워있느라 허리는 조금 아팠지만, 혼자 낮잠 재우기 성공은 아내와 내게는 꿈같은 이야기라 기쁘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기고 했다. 그리고 어제는, 아내가 새벽에 거실에 나가있는 잠깐 사이 아이가 밤잠에서 깨어 두리번대다 순식간에 내 품으로 쏘옥 들어와 다시 잠에 들었는데, 내게는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래서 어제도 자세를 못 바꿔서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둘이 문화센터 체험, 아이와 둘이 육아센터 체험, 아이와 둘이 낮잠 등등, 아빠로서 아이와 '단 둘이'하는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며 느끼는 점은, 아이가 아빠에게 오지 않는 대부분의 현상은 일시적이고, 시간과 노력을 통해 개선이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다!'는 식의 희망 글을 쓰고 있지만, 불과 2주 전만 해도 아이 낮잠 시간에 아내가 '재워 볼래?'라고 물으면 나도 은근히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곤 했었다. '아니 내 근처에는 와야 잠을 재우든지 말던지 하지..'는 식의 볼멘 소리가 절로 나오곤 했다. 그리고 아직도,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있으면 아빠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봐...어제 우리 둘이 있을 땐 아빠한테 생긋 웃어주곤 했잖아..(눈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 아이는 아빠와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겨우 3주 지났고 앞으로 갈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나 희망찬 말인가. 육아는 열심히 시간을 보내면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영역이라는 것이.
내일도 아내가 점심 약속이 있어 아이와 둘이 반나절을 보내고 낮잠을 재울 예정이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이젠 두렵지만은 않다. 언젠가, 아내와 내가 둘이 있을때도 내 손을 끌고 들어가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