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닌 잘 지내보는 것
2023. 1. 16. (월)
"하아..."
평일 오후 2시. 나도 모르게 깊이 한숨이 나온다.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한 첫째가 하루종일 떼를 쓰고 있다. 평소에도 떼는 쓰지만 왜 유독 심한 날이다. "점심 먹을까?"라는 일상적인 질문에 마치 나라를 잃은 것처럼 오열을 하는 그런 날이라면 아시려나.
아내가 오전에 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후, 아이는 TV를 껐다고 울고, 옷을 입기 싫다고 울고, 옷을 벗기 싫다고 울고, 사과가 싫었다가 좋았다고 울고, 요구르트를 먹여주는 게 싫다고 울고, 혼자 먹는 게 안된다고 울고, 응아를 해서 찝찝하다고 울고, 그렇다고 엉덩이를 닦기는 싫다고 울고, 코가 많이 나와 코뻥을 하고 싶다고 울고, 코뻥을 막상 하려니 무섭다고 울고, 졸리다고 울고, 자기 싫다고 울고. 뭐 그런 날이었다.
이 통곡의 현장에서 TV 시간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달래며 옷을 입히고, 점심을 준비해서 먹이고, 남은 사과를 먹어 음식물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쾌변을 위한 요구르트를 먹이고, 아이를 설득해서 기저귀를 갈고 로션을 바르고, 코뻥을 한 후 코 세척 팁을 세척하고, 책을 열 권 넘게 읽고 빔프로젝터를 천장에 띄워 온/오프라인 자장가를 1시간 넘게 하며 재우려고 노력하던 그런 날이기도 했다.
유독 힘든 날이냐고?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매일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아프면 예민도가 높아져서 조금 더 어려워지고, 반대로 아이가 건강하고 낮잠도 잘 자고 기분이 좋으면 평소보다 무난하게 넘어가고 하는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일상이다. 삼시세끼 아이 편이라면 맞을까?
육아는 정말 쉽지 않다.
육아에는 나의 신체 리듬과 감정뿐 아니라, 아이의 신체 리듬과 감정이 섞이고, 그에 더하여 매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발적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의 특성상, 아이의 신체 리듬과 감정은 매우 불안정하고 미완성된 형태라 어른인 부모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부모와의 일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 같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방식이나 표현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분노를 다스리고 제어하는 방식까지 부모를 보며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능숙하기보다 서툰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고, 또 서툴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앞에서 떼를 쓰고 우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 보면 고민이 깊어질 때가 있다. 내가 이 아이의 서툰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주어야 할까. 찬찬히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키기엔 조금 어리고,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울음이 끊이질 않을 것 같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다.
나와 아내에게 찾아와 준 이 아이를 '키워낼' 생각 하지 말자. 그저, 아이와 잘 지내보는 것이다.
속도가 조금 느려도, 방향이 삐둘빼뚤해도, 이 아이가 그 나름의 감정을 만들때까지 기다려주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공격적으로 아이를 끌고 가는 목줄도 아니고, 형태도 없이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도 아니고, 아이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울타리 같은 가정을 만들어나가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의 목표가 함께 살아갈 울타리를 지어 나가는 것이라면 이런 일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니, 육아의 일상은 울타리를 짓는 그 과정인 것이다. 오늘 하루, 아이는 울고 웃었던 만큼 세상을 배워나갔을테니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어서 자야겠다. 내일도 열심히 인내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