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천동잠실러 Jan 21. 2023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가 아닌 책으로 아이를 읽기

2023. 1. 20. (금)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첫째 아이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많이 읽을 땐 오전에만 10~20권에 달하는 책을 읽는데, 같이 읽다 보니 나도 내용을 거의 외워서 마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아이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해서 그림을 위주로 보는 눈치인데, 재미있는 건 내가 글자를 읽고 있으면 책을 넘기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다 끝나가면 책을 넘길 준비를 한다.


그리고, 책마다 나름 좋아하는 이른바 '꽂힌' 장면이 있다. 예를 들어, 공룡 중에 트리케라톱스를 유난히 무서워하는데, 무서워하면서도 절대 그 페이지를 생략하지 않고 매번 트리케라톱스를 콕 집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셔~'라고 동작을 하고 넘어간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도 '포풍우!~우르릉 쾅!'을 외치고 바들바들하는 동작을 반드시 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그런데, 아이가 책을 중간까지만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 딱 끊고 다른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그래도 기승전결을 보고 마무리를 지어야지'라는 직업적 본능(?)에 '이거 뒤에까지 읽어보자~응?'하고 설득해도 거기까지만 읽고 다른 책을 읽어달라고 초롱초롱 쳐다보니 읽어줄 수도 없지만 매번 찝찝했다. 이렇게 읽는 게 교육적으로 맞는 건가... 사실 곰돌이 팬티가 어딨는지 나도 너무 궁금한데...




휴직을 하고 나서는 평일에도 집에 있으니 내가 책을 더 많이 더 자주 읽어주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인지 책을 읽어주는 와중에 찬찬히 아이의 표정을 지켜보다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게 아니라, 책으로 아이를 읽는 시간이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같은 책이지만 지난주에 멈춘 페이지와 오늘 멈춘 페이지가 다르고, 조용히 쳐다만 보다 넘기던 지난 주와는 달리 이번 주에는 씩 웃거나 나를 따라 하는 식으로 반응을 하기도 한다. 딸기만 열 번을 외치던 지난 주와는 달리 이번 주에는 딸기를 먹는 여자 아이가 누구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는 매일 성장하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책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통해 그 성장을 조금이나마 부모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요즘도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신중하게 책을 골라 나에게 가져오곤 하고, 나는 그 책 속의 글자를 읽는 척 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이번에는 무엇에 꽂혀있는지(?)를 집중해서 지켜보곤 한다. 찬찬히 지켜보면 매주 재미있는 변화들이 많이 숨겨진 것이 아이와의 책 읽기인 듯하다.


어제와 오늘, 유독 나보다는 엄마에게만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좀 쓰라린데, 아내와의 '책 읽어주는 사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 봐야겠다.


첫째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딸기 장면. 얼마 전에는 딸기에만 집중하더니 이제는 여자아이가 누군지도 물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차피 아이는 기억도 못할 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