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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Jan 23. 2023

존재를 사랑하다

모든 아이, 그리고 아이로 태어난 이들에게

2023. 1. 22. (일)


아내와 나는 결혼 전후로 아이에 대한 진중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에는 각자 대학원 졸업 직후 시험을 준비했고, 시험 합격 직후 둘 다 바로 일을 시작했으며, 야근이 잦아 주말에나 간신히 만났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지루한 코스라고 말하는,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서 수다 떨고' 하는 것도 감지덕지였고, 마침 코로나도 악화되어 결혼도 간신히, 신혼여행도 국내로 간신히 다녀왔다.


결혼 후에는 그럴 시간이 더욱 없었다. 첫째 꿀떡이가 결혼 후 한 달도 안 되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긴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아버님'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던 순간, '이게 심장소리예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건조한 설명에 가슴이 쿵 내려앉던 순간, 예정일을 코앞에 두었는데도 뒤뚱뒤뚱 출근하던 아내의 뒷모습, 산통 내내 미리 연습한 호흡법을 반복하던 순간, 퇴근 후 조리원에 뛰어가 유리창 너머로 쿨쿨 자는 아이와 웃는 아내를 가만히 쳐다보다 면회시간을 다 보내던 순간 등.


세상에 태어난 꿀떡이에게만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에게도, 아이와의 모든 순간은 '처음'이었다. 




"매 순간이 너무 힘들긴 한데, 그래도 꿀떡이가 없었으면 결코 몰랐을 것들이 많아."


오늘, 설 명절을 맞아 양가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한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하는 육아는 참 답이 없고, 끝이 없고,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맞다. 결코 쉽지 않은 그 과정 속에서 또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작게는 자잘한 육아 지식이 늘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신 '혼자 아이 키우기'나 '일하며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인지도 조금씩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꿀떡이를 만나고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존재(存在)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아내는 꿀떡이를 품으며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았다. 꿀떡이를 지키기 위해 아내는 식이요법을 시작해야 했고,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지자 워킹패드를 사서 저녁마다 매일 운동을 했다. 임신성 당뇨 외에도, 나는 여자가 뱃속에 아이를 품는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특별히, 한평생 엄마를 지켜온 엄마의 신체가, 아이가 머무는 동안에는 엄마보다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신비를 몰랐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꿀떡이는 첫울음과 함께 옆에 서 있던 내 품에 안겼다. 눈도 못 뜨고, 아직 씻지도 못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인상에 얼굴은 쭈굴쭈굴했고, 쪼끄만 게 앙칼지고 까랑까랑하게 울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처음부터 출산이라는 끝, 그리고 육아라는 새로운 시작과 지금도 계속되는 모든 순간 속에서, 나와 아내는 단 한 번도 꿀떡이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았다. 


꿀떡이는 우리를 찾아온 순간부터 사랑의 대상이었다. 어떤 부분이 아닌, 그 존재 자체가 말이다.




경쟁 사회라는 이 험한 세상에 찾아오면서도 뱃속에서 10개월 간 세상에서 살아남을 자신만의 '필살기'를 준비하지 않고, 맨몸으로 발가벗은 채로 아내와 나를 찾아온 꿀떡이를 아내와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꿀떡이의 존재가 소중한 만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또 읽는 당신도 그 존재로서 소중하다고 믿는다.


모든 아이는, 그리고 한 때 아이였던 모든 이들은 존재로서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것 저것 다 포기해도 존재는 포기하지 말기를. 


존재하는 당신은 아직도 사랑받아 마땅하므로.



'어이..자네 왔는가..' _ 산후조리원 코로나 정책으로  방역가운에 마스크까지 쓰고 유리창 너머로만 인사하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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