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12월 말 휴직 이후 크리스마스, 연말에 설 명절까지 있어서였는지,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간 것 같고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던 것이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지난 한 달 동안 남편이자 아빠로서 꽤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나의 육아휴직은 단순히 나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 우리 가족의 삶에도 이런저런 변화들을 가져왔다.
평일에 자유롭게 가족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평일 여행을 위해선 연차를 써야 했는데, 회사에서의 직무 특성상 다른 팀원이 내 업무를 대체하기 어려워 연차를 2일 이상 붙여서 연차를 쓰는 것이 어려웠다. 주말에는 거리에 차도 많고 어딜 가나 사람도 많은 환경을 감수하고 여행을 다녀야 했는데, 나와 아내는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해서 주말여행은 포기하곤 했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내가 자유(?)를 얻으니 평일에 자유롭게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강원도의 리조트로 2박 3일 그리고 경기도 화성으로 1박 2일, 한 달 동안 2차례 평일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더 많은 여행을 계획했으나 중간에 첫째가 독감에 걸려 중간 2주 간은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여행을 다녀오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 달 동안 다녀온 두 번의 여행은 정말 행복했다. 첫째 꿀떡이는 특히 강원도 바다에서 본 꽃게와 갈매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책을 읽을 때마다 외치고 있다.
아내가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1년 넘게 모유 수유를 했고 코로나로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은 채 24시간 가정 보육으로 길러져 온 아이라, 의식주 전반에서 엄마 독점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다. 생각해 보라. 태어난 이후 주말을 제외하고 24시간을 엄마와만 함께한 모유수유 베이비라니. 물론 주말에 나와 놀 때는 잠시 재미있어했지만, 졸리거나 배고파지면 무조건 엄마를 찾았다.
한 예로, 휴직 전 어느 주말 부산에 사는 아내 친구가 우리 집 근처를 들릴 일이 있어, 집 앞 카페에서 30분 정도 잠깐 만나자고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호기롭게 '다녀오라'라고 했는데, 잠시 나와 잘 놀던 아이는 아내가 집에 없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고, 결국 아내는 급히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얼마나 자괴감이 들고 미안했는지. 30분도 못 버티다니.
그래서, 휴직을 하고 나의 최우선 목표는 '아내 해방시키기'였다. 평일 문화센터나 놀이방, 놀이터에는 무조건 내가 아이와 함께하고, 근처 마트나 구청에 가는 짧은 외출 계획들은 아내가 혼자 다녀오게 했다. 물론, 중간에 엄마가 없다고 아이가 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 몇 가지 대안(인간 그네 태워주기, 댄스/운동 타임, 인형극, 빔프로젝터로 호비 보여주기 등)을 미리 마련해서 그때그때 대응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한 달 동안 아내는 지난 2년여간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와 함께하는 일상에 더 빠르게 녹아들어 갔다. 물론,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지 쉬운 과정이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눈물 스윽). 휴직 전에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컸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육아휴직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고 일어나 아빠'도' 찾게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이가 잠든 사이 집을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어쩌다 아이가 일찍 깨더라도 '아빠는 나간다'는 것이 워낙 익숙한 상황이라 아이가 딱히 나를 찾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도 그렇고.
휴직 후에는 별도로 알람을 맞춰놓지 않기 때문에 아침잠이 많은 나는 계속 자고, 아이와 아내가 일어나서 나를 깨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코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맞이하는 아침이 이렇게나 행복할 줄이야. 바로 아이 손에 끌려 모닝 동화책 릴레이가 시작되긴 하지만. 오후 낮잠을 자고 나서도 내가 옆에 없으면 아이가 '아빠는~?'하며 나를 찾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아빠도 아이에게 '없으면 이상한 존재'가 된 것이다.
간단한 요리와 살림 기술이 추가되었다.
휴직 전에도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 쓰레기 버리기, 설거지(를 해주시는 식세기 님께 그릇 바치기), 청소, 빨래(를 해주시는 세탁기와 건조기님께 빨래물 가져다 드리기) 등은 해왔지만, 요리 관련된 일은 모두 아내가 전담해서 했다. 부끄럽지만 집에서 막내였던 나는 결혼 전까지 과일을 씻거나 깎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와 둘이 있으려면 아이 밥을 먹여야 했다. 게다가 첫째는 모든 종류의 과일을 좋아하는 과일 킬러여서, 매 끼니마다 과일을 씻고 깎아 줘야 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고, 급한 경우에는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찾아서 나도 먹고 아이도 먹이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느낀 것은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도 결혼하고 과일이나 채소를 처음 씻어봤다. 사과를 깎는 법을 배울 때는 내가 칼을 쥐는 모습에 아내가 빵 터져서 웃곤 했다. 사과를 죽이려는 거냐며.
어찌 되었든 육아를 하려면 아이를 먹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인터넷에 정보가 워낙 잘 정리되어 있고, 어른이든 아이든 밀키트 포함 이런저런 제품이 워낙 잘 구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안 해봐서 두렵긴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다. 나도 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배달 음식은 줄고, 냉장고도 텅텅 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내가 집에 있어서 아이와 놀아주니 아내도 요리할 시간이 있는 데다, 집에서 가장 많이 먹는 내가 계속 집에 있으니 냉장고가 금방 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배달음식은 시켜 먹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가고 싶은 맛집이나 디저트 가게가 있으면 평일 낮에 가서 먹고 오거나 포장해서 오는 것이 일반적이게 되었다.
육아휴직 후 고정수입이 상당히 줄긴 했지만, 그만큼 이전에는 외식, 배달음식 등으로 만만치 않던 월 식비가 생각보다 많이 줄어들게 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만큼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아직 겨우 한 달이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엄마 껌딱지 첫째 아이도 이제는 나와 낮잠을 자고, 이를 닦고, 또 소파에 내가 앉아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품에 파고들곤 한다. 아내도 나도 하루 종일 대화가 늘고 그래서 또 웃음이 늘었다. 나도 아빠로서 한 단계 성장했고, 아내도 엄마로서 한숨 쉬어가고, 아이도 자녀로서 더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