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살 아이에게 지루함을 가르치다.
2023. 1. 25. (수)
오전 일찍 아내가 외출했다. 둘째 찰떡이의 산부인과 정기검진일이기도 했고, 산후도우미 신청 등 다른 볼일들이 있어 오전 내내 첫째 꿀떡이와 내가 단 둘이 있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꿀떡이의 기분이 좋지 않은 눈치였다. 요즘 평소보다 예민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침을 많이 흘리는 걸 보니 마지막 어금니가 나려는 것 같은데, 이런 날이면 유독 엄마를 찾고 칭얼대기 쉬워서 마치 기분이 좋지 않은 상사를 대하듯 '어떡하지'하며 내적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내 손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잘 놀았다. 평소에 좋아하는 책을 4~5권 함께 읽고, 장난감 박스를 내려 안에 있는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거실에 있는 인형들을 줄 세우고 계속 자리 배치를 바꾸기도 했다. 낱말카드를 보기도 하고,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고, 중간중간 과자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2시간쯤 놀고 나니 거실은 책, 장난감, 인형, 낱말카드, 스케치북 등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미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씩 가지고 놀아본 아이가 살짝 지루해하는 눈치였다. 그 잠깐의 지루함, 정적 속에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까 봐 긴장하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있었고,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뽀로로나 호비 영상을 틀어주고 그동안 나도 부엌 정리를 하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컨을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갑자기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부모인 내가 이 잠깐의 정적도 참지 못하고 이 어린아이에게 TV를 틀어주면, 앞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 등을 거쳐 지금보다 바쁘게 살아갈 이 아이에게 '정적 속에 살아가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주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리모컨을 가만히 내려놓고 아이를 가만히 놔두어 보는 모험을 했다.
'사각사각'
아이가 인형 위에 앉아 식빵을 먹는 소리만이 거실을 가득 채웠고, 나도 휴대폰을 옆으로 치워놓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며 잠시 그 정적 속에 함께 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고 베란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빵을 먹었고, 나도 아이에게 별다른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아이를 쳐다보며 함께 멍을 때렸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빵을 다 먹은 아이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평소에 나와 놀 때는 한 번도 꺼내지 않던 카드를 가져오기도 하고, 처음으로 나와 공기놀이를 같이 하기도 했다. 아빠 육아휴직 후 지난 한 달, 아이와 내가 가지고 있던 나름의 레퍼토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들이었다. 마치, 축구에서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이 시작된 것 같기도 했고, 잠깐의 정적이 아이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만히 있어보기' 대신 리모컨을 택했다면 아이에게서 볼 수 없었을 새로운 모습을 본 것이 좋았고, 아이와 내가 '아무 말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도 편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아 내심 혼자 뿌듯하기도 했다. 정작 아이는 별생각 없이 신경도 안 쓸 수도 있지만 (눈물 스윽).
그렇게, 아이는 지루함 속에 아빠와 함께 '가만히 있는 법'을 배웠다.
아빠 육아휴직을 한 후, 아내 없이도 내가 아이와 잘 놀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빠인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의욕 넘치는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아이와 놀기는 했는데,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정적이 생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어느 정도 놀아주고 나면 TV를 틀어주곤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아이는 잠깐의 정적과 지루함에 금방 적응했고, 정적을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사물과 공간을 창의적으로 새로이 관찰하기 시작하는 듯 했다. 오히려 부모이자 어른인 내 조급함이 아이에게 그 잠깐의 정적도 허용하지 않아 아이의 관찰력을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아이는 지루함 속에서도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오늘부터 아이가 정적 속의 지루함에 지쳐 울다 나한테 안기더라도, 그렇게 안긴 채 나와 새로운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새로운 놀이를 하든, 그것도 아니면 같이 옷이라도 입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와의 이 소중한 정적과 지루함의 시간을 TV에게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가 가정에서부터 지루함을 배우고 정적 속에 가만히 있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빠르게는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 중, 고교를 넘어 대학 등의 고등 교육 및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가 오더라도, 사랑하는 이 아이의 삶에 언제나 '가만히 쉬어갈 줄 아는 지혜'가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초보 아빠인 나는 오늘부터 아이와의 정적(靜寂)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