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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Jan 28. 2023

"너 어디 초등학교야?"

놀이터에 노는 아이가 없다.

2023. 1. 27. (금) 


놀이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깊은 잠에 들었다. 집에 도착 후 잠시 차에서 아이가 깨기를 기다리다 보니, 집 앞 놀이터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찾기 힘든 흙이 깔린 옛날식 놀이터다. 


날이 춥고 눈이 와서 그런 것일까. 놀이터인데 노는 아이가 없다. 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잠깐 서성이며 눈을 차고 놀다가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한 란색 학원버스를 타고 떠났다. 가만히 차에 앉아 그 아이가 떠난 놀이터를 바라보던 마음이 조금 슬펐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가 없다.




나는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면 신발주머니를 휭휭 돌리며 운동장이나 놀이터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한참을 놀다 집에 가곤 했다. 


주말 오후나 저녁, 축구공 하나 들고 무작정 집 근처 놀이터에 가보면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라도 아는 아이가 있으면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얼음땡', '탈출' 등의 놀이에 참여하곤 했다. 가물가물한 기억인데, 놀이 중에 새로 참여하는 사람이 자동으로 술래가 되는 규칙이 있어서 새로 온 아이가 자연스럽게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함께 노는 아이들의 학교도 각양각색이어서, 깔깔대면서 한참을 놀다가 나중에서야 "근데 너 이름이 뭐야?", "너 어디 초등학교야?"라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선 놀이, 후 통성명이랄까.


그때의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첫 사회생활 장소였다.




놀이터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놀이 규칙 하나를 바꾸더라도 모두가 열띤 토의를 해서 전원 합의에 이르러야 했고, 종종 사람 수가 안 맞거나 누군가 나이 어린 동생을 데려오면 '깍두기'로라도 두고 함께 놀며 소외시키지 않았다. 마을마다 조금씩 규칙이 다르기도 했지만, 그때는 참 당연한 것들이었다. 


처음 만나는 어색한 사이여도 인사하며 나이, 이름, 학교 등을 물어보고, 그 후 나이에 따라 나름의 위계질서(?)를 만들어 그 안에서 함께 노는 법을 배웠다. 내성적이었던 나도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놀이터'라는 이름처럼, 놀고 싶은 아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랬던 놀이터가, 이제는 아이가 학원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머무는 '정류장'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슬프다. 이제 두 돌이 되어가는 첫째 아이와 곧 태어날 둘째 아이가 앞으로 놀이터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이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학교 외에 새로운 친구를 어디서 사귈 수 있을까. 코로나로 마을 공동체의 개념도 흐려지다 못해 거의 없어진 지금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고 사귈 수 있는 곳이 점점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즘 아이들이 '혼자' 놀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아 '함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학교가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다른 어떤 배경이 달라도 상관없이 '함께 어우러져 노는 법'을 가르쳐주던 곳이 내게는 놀이터였다. 


각자의 가정과 학교를 통해 배우는 것만큼이나, 놀이터에서 얻은 배움과 추억이 정말 많았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 이름도 학교도 모르면서 한참을 같이 놀다가, 집에 가는 길에서야 "근데 너 어디 초등학교야?"라며 서로 어색하게 웃고 나면 서로의 호칭이 '친구'가 되곤 했다. 그렇게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친구로 이어주던 놀이터가 그립다. 그런 자연스러운 어색함이 사라져 가는 놀이터를 보며,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은 이제 어디서 어떻게 자연스레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것들이 사라져 간다. 놀이터에 노는 아이가 없어지듯 말이다.


어느 날 오후, 아빠와 놀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동네 언니 오빠들이 오지 않아 혼자 놀고 있는 불쌍한 우리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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