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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08. 2023

부모가 될 준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

2023. 2. 8. ()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결혼하던 날, '함께, 멀리, 오래'가 새겨진 반지를 서로 주고받을 때 그 대상은 아내와 나, 우리 둘이었다. 물론 결혼을 했으니 언젠가는 부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갑작스러운 아내의 감기증상과 함께 첫째 아이가 찾아왔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못하고 부모가 되었다.


임신의 과정, 출산과 육아는 점점 더 쉽지 않았다. 임신은 매주, 매달마다 확인하고 조심해야 할 것 투성이었는데, 거기다 아내는 '임신성 당뇨' 진단까지 받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아내와 같이 식단을 하고 주말마다 걷기 운동을 한 후 같이 손가락을 찌르며 혈당 수치에 울고 웃었다. 그때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다 보니 단 둘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산책하던 그때가 그립기까지 하다.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 자라는 모든 과정들은, 거의 대부분 예측 불가능한 어려움들의 연속이었다.


틈날 때마다 집 근처를 산책하고 풀만 뜯어먹던 날들 (Feat.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항상 그때는 모른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

오랜만에 대학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던 중에, 한 친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빠가 되는 것을 조금 늦추어보겠느냐'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니. 똑같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행복했다. 아내와 3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첫째 없이 우리 둘이 다니던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우리에게 첫째 꿀떡이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농구, 축구, 수영, 스키, 악기연주 등 많은 취미생활을 즐기던 나는 첫째가 찾아오고 모든 취미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니, 아쉬워할 틈이 없을 정도로 꿀떡이나에게 기쁨이었다.


배냇짓 한 방으로 엄마아빠 하루 피로를 다 날려주던 신생아 시절



아이가 찾아오고 나서야 나는 아빠가 되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첫째 꿀떡이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평소 바닷바람에 뗏목 흘러 다니듯 힘을 빼고 이리저리 살아가던 나는 이제 미래를 고민하고 기획하기 시작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건강하다'며 야식에 탄산음료를 들이붓던 나는 이제 야식을 끊고 따듯한 물을 마시며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아빠, 엄마, 그리고 누나에게 이런저런 섭섭함과 아쉬움을 토로하던 나는 이제야 나의 부모님, 그리고 첫째로서 나를 맞이해야 했던 누나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가 생기고서야 나는 비로소 아빠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그간의 추억들


부모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


모르긴 몰라도, 이제 곧 둘째 찰떡이가 태어나면 더 쉽지 않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 아내는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아직 만 두 살도 되지 않은 꿀떡이는 누군가의 누나로서의 새로운 일상을 살아갈 테니 말이다.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두렵거나 막막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갈 테니 말이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갈 것이고, 꿀떡이도 찰떡이의 누나가 되어갈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을 테지만, 우리 각자의 그 '되어감'이 은근히 기대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만큼, 아니 더 큰 행복이 우리 가족을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꿀떡이가 우리 부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준비되지 않음'으로 부모가 되기를 주저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부모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되어감'을 기꺼이 감당할 만큼 충분히 행복한 순간들이었노라고 말이다.


신생아 때 귀엽고 앙증맞았던 발에 비해 약 21개월만에 우람해진 꿀떡이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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