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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10. 2023

아내가 응급실에 갔다

둘째 임신 36주 차에 코로나라니

2023. 2. 10. (금)


만삭 임산부인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여보. 나 갑자기 오한이 너무 심하게 왔는데 옷 좀 가져다줘."


그제 자정 즈음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와 브런치에 글을 쓰는데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얼마나 심하길래 바로 옆방에 못 오지?' 하는 마음에 후다닥 가보니 아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바로 양말을 신고 옷도 더 입고 따듯한 물을 마시니 땀도 나고 오한도 나아지긴 했는데, 체온이 문제였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재는데 3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응급실에 연락을 해보니 일반인은 약을 먹으며 기다려보겠지만 만삭 임산부라면 체온을 빨리 떨어뜨리는 게 좋다고 했다. 


결국 새벽 3시, 아내는 혼자 응급실에 갔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코로나 확진이었다.


코로나 빼고 모든 시나리오를 다 생각하고 있던 어리석은 두 사람 (Feat. 캐나다 출신 아내의 WTF)


설상가상, 엄마가 없는 새벽에 아이가 깼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내의 코로나 확진 결과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아이가 잠에서 깼다. 출생 후 21개월이 가깝도록 아직 한 번도 엄마 없이 잠을 자본 적이 없는 첫째는 자연스레 엄마를 찾았다.


나: "아가~아빠랑 다시 잘까?"

꿀떡: "(눈도 못 뜨고) 아니야~엄마~"

나: "어~엄마가 지금 아야 해서 곰돌이 의사 선생님한테 주사 콕 맞으러..."

꿀떡: "..........(엄마 없는 인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후 위 상황이 무한 반복되었다. 아이는 울고, 나는 아이가 다 울고 말이 통할 때까지 토닥이며 기다리고, 아이는 울다 지쳐 나한테 안기고, 그제야 아이에게 엄마가 병원에 갔다는 얘기를 다시 하고, 그렇게 잠시 평화가 찾아온 후 다시 잠이 들다 엄마가 없다며 아이가 다시 울고. 그러다 결국 2시간쯤 지난 새벽 5시 즈음, 아이와 나는 지쳐 잠이 들었다. 아내가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베이비캠으로 대화소리를 듣는데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2시간 가까이 저 대화가 계속되었으니..


그렇게 얼렁뚱땅, 꿀떡이엄마 없이 밤잠 자기에 성공(?)했다.


물론 그날의 후유증으로 이틀 연속 낮잠을 자지 않고 있는 꿀떡이 (물어보니 엄마가 또 병원 갈까 봐 불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갈 곳이 없다.


다행히 아내는 응급실에서 열이 잡히고 염증수치도 나쁘지 않아 우리가 잠든 사이 귀가했다. 문제는 아내의 격리 장소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내의 친정은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이 걸리는 수도권 외곽 지역이었다. 출산이 코앞인 상황에서 인근에 대학병원이 없는 곳에 임산부가 있는 것도 불안했고, 장모님도 일을 나가셔야 하는 상황이라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시댁인 우리 집 또한 엄마가 최근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시라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남은 건 거실 하나에 방 두 개인 우리 집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아직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없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 불과 한 달 전에 독감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첫째가 코로나에 걸리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 네 가족은 아내의 코로나와 함께 지내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숨이 차는 만삭의 아내는 마스크를 두 겹을 낀 채 틈나는 대로 손을 씻으며 작은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지내고 있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마스크를 낀 채 안방과 거실을 환기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며 아기용 소독액을 손에 쥐고 살고 있고.


모두에게 가혹하지만, 첫째 아이가 있는 경산모에게 코로나는 유독 가혹한 것 같다. 자기 몸뿐 아니라 눈앞에 첫째 아이, 그리고 뱃속의 둘째 아이를 모두 지켜내야 하다니. 가끔은 어리바리 남편도 지켜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고 있다.


만 2일이 지난 현재까지는 아이도 나도 건강하고, 아내도 그럭저럭 잘 이겨내고 있다. 물론 첫째 아이는 뭔가 찡찡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늘어난 듯한데, 사실 그렇게 큰 타격은 없다. 찡찡거림은 육아의 기본 미션 같은 거니까 그 정도가 조금 심해졌다고 해서 크게 체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엉덩이를 씻길 때 응이 묻은 욕실 바닥에 무릎을 대며 장난을 치고, 하지 말라니까 아예 온몸을 내던지던 첫째의 모습을 보며 멘탈이 살짝 무너질 뻔했지만 잘 참아냈다. 칭찬해 나 자신. 쓰담쓰담.


첫째가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고 평소 사람 많은 곳에 외출도 자제하던 우리 가족도 결국 코로나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네 가족이 여전히 함께라서 마음은 차라리 편하고 든든하다. 아내가 응급실에서 돌아온 아침, 아내와 이런저런 선택지를 논의하다 속에서 툭 튀어나온 말처럼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쨌든 우린 잘 이겨낼 거니까."


그래... 너 건강한 거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내려와 주겠니? (결국 책장 위로 올라가서 울면서 강제로 연행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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