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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13. 2023

부모가 되어 부모를 바라보다

아파도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2023. 2. 13. (월)


첫째가 코로나에 걸려 응급실에 간 지난 금요일. 내 손가락을 꽉 쥐고 잠이 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며 막막함을 애써 감추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파도 행복했던 날들


어렸을 때 뇌수막염에 걸려 한동안 누워 있던 기억이 있다. 평소 티격태격하던 누나가 무슨 일인지 내게 친절했고, 엄마는 내가 아파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몸속에서 '정의의 용사'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니 나도 잘 이겨내야 한다고.


재미있게도, 어린 나에게 그 아픈 날들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아픈 기억은 온데간데, 엄마가 쓰다듬어주던 손길과 상냥한 목소리만 남았다.


어렸던 나도, '나보다 엄마가 더 아파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통증을 느끼는 나보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엄마가 더 아파했다. 밤낮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를 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잠결에도 귀에 맴돌았고, 그 간절함이란 것은 마음이 저리도록 본능적이어서 어린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사랑이라는 거구나.'


아팠는데, 행복했다.



부모가 되어 그 마음을 다시 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를, 타고난 성격이 예민하고 세심하신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을까. 아빠를 쏙 빼닮은 누나와 엄마를 쏙 빼닮은 나, 한 배에서 나왔다는 것 빼고는 너무도 달랐던 두 살 터울 남매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첫째 꿀떡이를 키우며, 누나와 나를 키울 무렵에 지금 나보다도 더 어렸던 부모님의 막막함을 훔쳐본다. 매 순간 두려웠을 것이고, 그만큼 서툴렀을 것이며, 모르긴 몰라도 초보 부모로 실수도 많이 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막막하고 서툴렀을지언정, 당신들이 내 어린 날들에 새겨준 그 사랑으로 약하디 약하게 태어난 내가 지금껏 이 세상을 기꺼이 살아낼 수 있었노라고. 그렇게, 젊은 날의 나의 부모님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께 약속하고 싶다. 이제 곧 태어날 찰떡이까지 우리 네 가족이 앞으로 살아낼 세상이 결코 녹록지 않겠지만, 그 만만찮은 어려움과 아픔도 사랑하며 잘 이겨내 보겠노라고 말이다. 당신들이 내게 새겨준 그 진한 사랑을 흘려내 보겠노라고.


아파도 행복한 날들, 사랑으로 가득 채워나가 보려 한다고 말이다.


아빠보다 할미할비랑 있을 때 더 신나보이는 꿀떡이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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