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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26. 2023

육아휴직 후 두 달이 지났다

"오빠도 육아 고인물(?)이네"

2023. 2. 26. (일)


아빠 육아휴직을 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60일이라는 시간은 꽤나 긴 시간인 듯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목요일만 되면 곧 주말이 온다는 생각에 설레곤 했는데, 이제는 아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주말이 온 줄도 모르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그간 딱 두 번의 연락이 왔는데, 경조사를 포함한 간단한 안부 인사 정도였다. 언제 돌아오냐는 애정 어린 잔소리 포함.


육아휴직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글을 썼었다. 내가 휴직을 하며 아내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평일에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아이가 아빠'도' 찾고, 간단히 요리와 살림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어느덧 두 달이 지난 지금, 다양한 변화도 있었고, 동일하지만 기본에서 심화로 넘어간 듯한 것도 있다.


1. [아이와의 애착] 아이에게 아빠 만의 영역 ("아빠망")이 생겼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있어 모든 영역의 1순위가 엄마였다. 비유하자면 아빠는 추가 사은품 같은 존재여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엄마만 있다면 크게 상관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른바 '아빠망'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생겼다 (아이가 '아빠만!'이라고 말할 때 발음이 아빠망처럼 들려서 우린 '아빠망'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이를 씻기는 일 (욕조 목욕 포함)을 휴직 후 내가 전담하다 보니 아이가 이건 '아빠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것도 '아빠망'이고, 밤에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것도 '아빠망'이다. 좋은 습관은 아닌 듯 하지만 엄마 몰래 아빠 노트북으로 호비 영상을 보는 것도 '아빠망'이다. "엄마는 안돼 안돼 (손 휘적휘적). 호비는 아빠망~ (파이팅 손동작)'이라며 살금살금 나를 데려가는 모습에 빵 터지곤 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가는 문화센터에도 휴직 후에는 모든 수업에 내가 들어가기 시작해서, 이제 아이도 자연스레 엄마는 빠빠이 해서 카페로 보내버리고(?) 손을 끌고 들어가곤 한다. 그렇게, 문센도 아빠망이 되었다.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제는 밤에 내가 잠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엄마에게 '아빠는?' '아빠 없네?' 하면서 계속 방마다 찾으러 다닌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와의 애착이 두터워지는 것은 매일매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나름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림도 '아빠망'이 되어 가는 중이라 본의 아니게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중 (Feat. 매우 험한 세월을 보낸 듯한 백설공주)


문화센터도 '아빠망'이라 엄마 없이 자유롭게(?) 놀이(라고 쓰고 먹기라고 읽는다)를 즐기는 꿀떡이


밤에 자기 전 아빠와 놀이 타임이나 호비 보기, 그리고 놀이터 가기까지 모두 '아빠망'이 되었다.


2. [아내의 정서] 아내가 임신 후기에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아내는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을 조금 부담스러워했다.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 내 상황을 잘 아는 아내는, 만약 '본인 때문에' 휴직하는 것이라면 하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했었다. 본인은 매우 강인한 멘탈갑 마미라서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며.  그런데 휴직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아내는 '오빠가 휴직 안 했다면... 후.. 아찔하다'를 자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 후기에 접어들며 아내는 몸이 훨씬 더 무거워진 반면 아이는 점점 더 빠르게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예상하지 못한 건 임신 중기와 임신 후기의 차이였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임신 중기도 물론 힘들지만 후기는 정말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이 다가오며, 아무것도 모르고 마주했던 첫째 출산 때와는 달리 이제는 한 번 겪은 그 과정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거기다 이젠 눈앞에 '엄마 껌딱지' 첫째도 아른거려서 생각이 많아진다고 한다. 거기다 몸은 몸대로 아프고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 호르몬은 호르몬대로 날뛰어서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막막함이 임신 후기 들어 자주 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 중기부터 내가 육아휴직으로 합류한 것은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난 두 달간 아이와 계속 같이 생활하며 이젠 엄마 없이 단 둘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없게 되었고, 자연스레 둘째 출산과 회복을 할 아내의 심적 부담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었다. 또한,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틈틈이 수다를 떨 때도 회사 일이 아닌 동일한 주제 (육아, 출산, 집안일 등)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 아무래도 한쪽이 일을 나갔다 오면 머릿속에 회사일이 더 많이 돌아다니기 마련인데, 부부가 공동육아를 하면 확실히 동일한 주제로 토론(?)을 할 수 있어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거실 가구배치 변경에 대한 이견으로 얼마 전 티격태격했지만. 나도 참 많이 컸다. 관심도 없던 가구 배치로 이견을 제시하다니. 아이도 엄마 배가 많이 나와서 거동이 불편한 것을 은근히 아는 눈치라, 놀이터에 가거나 몸을 쓰는 일은 다 나에게 와서 매달린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엄마보다 큰 장난감(?)으로서 아빠의 존재가 반가운 듯하다.


3. [건강] 뜬금없이, 내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오늘 오랜만에 결혼식에 갈 일이 있어 바지를 입다가 깜짝 놀랐다. 허리 사이즈가 결혼할 때의 슬림한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는데, 비단 복부 둘레뿐 아니라 여러 건강 측면의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찾아오던 편두통도 사라졌고, 이앓이나 코골이도 없어졌으며, 배에 가스도 훨씬 차게 되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면'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확실히 잠이 부족했는데, 야근이 잦은 것도 이유였지만 밤에 침대에 눕고도 생각할 것이 많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러다 거실에 나와 음료수를 마시거나 과자를 먹곤 했는데, 그러면 더 잠이 들지 않아 다음 날 더 피곤한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 그런데, 휴직 후엔 아이에게 리듬을 맞추다 보니, 오후에 낮잠도 1시간씩 자야 했고 밤에는 8시 반이면 침대에 누워야 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내가 더 졸려져서 먼저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 보니,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면 잠에 들었다. 새벽에 깨서 글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10시 전부터 잠을 자기 시작하니 수면의 질이 훨씬 나아졌는지 일어날 때 훨씬 개운한 것 같다.


식사도 그렇다. 수면과 함께 아이와 삼시 세끼를 같이 먹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규칙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지인인 한의사 분의 권고를 받아 야식과 단 음식을 끊고 한약을 먹기 시작했다. 한약이 생각보다 비싼 편이라 '내돈내산'의 힘으로 열심히 먹게 된다는. 그리고 확실히 한 명이 애를 보고 다른 한 명이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배달음식을 거의 안 시켜 먹게 되고, 아이와 함께 먹을 밥을 준비하다 보니 우리도 본의 아니게 건강식을 먹게 되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4. [기타] 무려, 과일을 깎을 수 있게 되었다.


씻어서 먹는 딸기, 블루베리나 껍질만 벗겨 먹는 귤, 바나나의 경우는 아이에게 쉽게 주곤 했는데, 아이가 껍질을 깎아서 먹어야 하는 과일(사과, 배 등)을 달라고 할 때는 매우 난감했다. 이전 글에서 고백(?)했듯, 나는 살면서 과일을 깎아본 적이 없어서 그간 어머니가 깎아주시거나 결혼 후에는 아내가 깎아주곤 했다.


시중에 껍질을 깎아주는 도구가 있어서 구매할까 고민하긴 했는데, 도구 크기가 커서 외출할 때나 급히 아이에게 깎아주어야 할 때는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아내에게 과일 깎는 법을 배웠다. 기껏 배워놨더니 요즘 들어 사과랑 배만 잘 안 먹는 얄미운 딸내미.


이렇게 비장할 일인가....


아내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짤 (Feat. 피 묻은 사과를 아이에게 주고 싶냐며)



"오빠도 이제 육아 고인물이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나란히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내일은 뭐 하지? 뭔가 새로운 놀이를 해주고 싶은데'라는 아내의 말에 정적이 길어지자 아내가 웃으며 한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매일 샘솟던 두 달 전과 달리, 점점 육아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참신함'이 없어진 나를 발견하며 아내와 같이 웃고 말았다.


지난 두 달, 어지간한 집안일과 첫째 아이 육아에 많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제 곧 둘째가 나오면 많은 부분이 또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 카시트도 두 개가 될 것이고, 집에 신생아 침대가 다시 들어올 것이며, 잠귀가 밝은 첫째 아이 꿀떡이와 신생아 둘째 아이가 어떻게 공생(?)해나갈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육아휴직 후 두 달 만에 '고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막 육아가 익숙해져 가는 나에게 새로운 상사가 오듯 둘째 아이가 합류한다. 둘째 아이가 집에 오면 나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부디 새로운 상사인 둘째가 나를 가엽게 여겨 100일 간 가끔 쪽잠을 자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기를... 물론 첫째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벌써 귀에 들린다. '아빠망!'


아빠 육아휴직, 두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조금 더 일찍 할 걸 그랬다.


육아는 고인물이지만 요리는 아직 초급. 출산으로 자리를 비울 아내의 불안함이 느껴지는 상세한 가이드라인


잘 때도 발로 아빠 팔을 잡아두고, 깨어 있을 때도 어딜 가나 아빠 손을 잡고 다니는 첫째 꿀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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