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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28. 2023

우리 아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2023. 2. 28. (화)


"에이.. 그런 건 또 왜 했어."


최근 아쿠아리움에 놀러 갔을 때, 아내가 입구에서 형광색 조끼(?)를 입으신 분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고기를 보고 신이 난 첫째 아이는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계속 보채는데, 아내의 대화가 조금씩 길어졌다. 한참이 지나 돌아온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둘째 찰떡이 이름으로 매월 3만원씩 기부를 하는 후원 약정을 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후원자 팔찌에 찰떡이 이름을 각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이미 아내와 내가 별도로 기부를 하고 있는데 뭘 굳이 더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에이... 그런 건 또 왜 했어"라고 말이 나왔는데, 아내는 그런 나를 조금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꿀떡이 태어났을 때도 오빠가 했잖아. 찰떡이도 해야지."


아내의 말에 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아이들


첫째 꿀떡이의 이름은 장모님이 지어주셨다. 출생 예정일을 수개월 앞두고, 장모님께서 몇 가지 이름들을 골라 주셨다. 좋은 이름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이름의 뜻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내도 똑같은 생각이라 이름을 정했는데, '값진 선물'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꿀떡이가 우리에게 찾아오고, 그 출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우리 부부에게 값진 선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꿀떡이가 태어난 후, 이 '값진 선물'에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하다 결정한 것이 후원이었다. 꿀떡이 이름으로 국내의 한 아이와 결연했다. 우리 부부에게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인 꿀떡이가, 우리뿐 아니라 다른 가정에도 좋은 소식으로 가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꿀떡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며 다른 아이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걸 기억하고 있던 아내는, 아쿠아리움 입구에서 혼자 외롭게(?) 서 계시던 후원단체 봉사자 분을 보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찰떡이 이름으로 국내결연을 한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찰떡이는, 그렇게 졸지에 엄마 뱃속에서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었다.


후원 증서와 찰떡이 이름이 각인된 팔찌


우리 모두의 아이들


아이를 키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카페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내가 이제는 아이 뒤로 지쳐 있는 부모의 얼굴이 먼저 보이고, 기사나 뉴스에서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외침 뒤에 얼마나 많은 부부와 부모의 고뇌가 있을지가 먼저 아른거리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꿀떡이를 키우고 찰떡이를 기다리며 한 아이, 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벌거벗고 온 이 작은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꿀떡이를 키우고 찰떡이를 기다리는 모든 순간은 결코 쉽지 않으면서도 절대 돌이키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그렇게, 내 아이의 소중함을 알고 보니 다른 아이의 소중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가 귀한 것처럼, 우리 부부의 아이가 귀한 것처럼, 다른 시기에 또 다른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찾아온 다른 아이들도 귀하다. 우리 부부의 아이는 아닐지언정,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존재로서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오빠 돈 열심히 벌어야 해. 앞으로 우리 더 할 거야."


아내는 결혼 전부터 항상 말했다. 본인은 어릴 때부터 '돈 잘 버는 남편 만나서 신나게 주변에 베풀며 사는 것'이 꿈이라고. 그래서 잘못 만난 것이 아니냐고 묻곤 했는데. 결혼 후 가끔 자동이체 내역을 보며 우리 가족의 기부금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하면, 아내는 여지없이 저 말을 반복하곤 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두 아이가 찾아온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꿀떡이와 함께한 지난 21개월은 쉽지 않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고, 이제 곧 찰떡이가 합류하면 모르긴 몰라도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우리 가족의 기쁘고 감사한 순간마다 후원과 나눔을 늘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 재정 후원뿐 아니라 함께 주말마다 봉사도 하는 등 여러 형태로 나눔을 해나가고 싶다. 그래서 결혼식 때 아내에게 편지로 약속한 삶을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내고 싶다.


결혼식 날, 손 벌벌 떨면서 읽었던 편지 내용 中


무엇보다 앞으로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만약 두 아이 중 하나라도 엄마를 닮았다면, 내 통장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얇아질 테니 말이다....(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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