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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pr 20. 2023

아이가 마음껏 아플 수 있도록

부모가 마음껏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

2023. 4. 20. (목)


일주일째 첫째의 열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수요일에 첫째 꿀떡이의 열이 40도가 넘은 이후 금요일에 한 번, 이번 주 월요일에 또 한 번 병원에 갔다. 꿀떡이는 열은 많이 나지만 다른 증상이 없고, 무엇보다 식사도 잘하고 잠도 잘 자는 상황이라 다른 처치보다는 해열제를 먹으면서 기다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좋아진다 싶더니, 오늘 낮에 체온계가 또 40도를 가리켰다. 글을 쓰는 지금은 다행히 열이 좀 떨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39도를 맴돌고 있으니, 만약 밤 사이나 내일 또 열이 오르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4번 가다니. 


좀 잦아드나 했더니 오늘 다시 40도를 찍고 해열제를 먹고서야 잠든 꿀떡이



아이가 아프면 부모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아이가 아프면 입맛부터 떨어지는데, 약을 먹어야 하기에 뭐라도 먹여야 하는 부모만 속이 타는 것이다. 보챔도 더 심해져서 집안일도 못하고 평소엔 곧잘 하던 양치질 같은 일상도 쉽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 열부터 재고 밥과 약을 먹인 후 아이 상태를 계속 관찰하고, 아이가 잠에 들더라도 부모는 밤새 체온을 재느라 쪽잠을 자는 것이다.


그뿐인가?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이전 글(링크는 아래 첨부)에서 썼듯 요즘 소아과는 예약과 대기의 전쟁이다. 누군가는 아파서 축 쳐진 아이를 일으켜 옷을 입히고 카시트에 태워 병원에 가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다 진료를 보고 다시 돌아오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도 우리 집은 부부가 '공동 육아휴직' 중이라, 아내가 신생아인 둘째를 보는 동안 내가 첫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올 수 있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지금도 각자 명씩 맡아서 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상황에서 한 명이 출근을 해야 한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휴가나 반차도 하루이틀이지, 아이가 일주일 내내 아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알게 모르게 눈치도 많이 보였을 테니 말이다.



문득, 회사에서 전화로 남편과 다투시던 차장님이 생각났다.


첫째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회사 복도를 걷는데 구석에서 싸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가까이 가보니 옆팀 차장님이 전화로 언성을 높이고 계셨다. 통화 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서 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아이가 열이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과 본인 중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가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까지는 차장님이 매번 휴가를 쓰시다 그간 쌓인 울분이 폭발하신 듯했는데, '나도 급한 회의가 있다고!'라며 울부짖던 차장님을 보면서 아이가 없던 당시에도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안타깝긴 했지만 당시에는 단순히 '그런가 보다'했는데,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 상황이 아찔하면서도 차장님이 존경스럽다. 맞벌이로 아이들을 초등학생까지 키워내다니. 지금 아내와 나는 공동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는 상황임에도 아이가 아픈 요즘의 일상이 이토록 지치고 힘든데, 맞벌이로 부모가 둘 다 회사에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아프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회사에서의 일상도 매일이 전쟁인데, 그 와중에 '아이가 아파서요'라고 하면 몇 명이나 고개를 끄덕이고 이해해 줄까?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차장님'들이 지금도 남편 또는 아내와 통화하며 울먹이고 있을까. 야속하게도 맞벌이 가정은 점점 늘고 있다는데 말이다.



출산율? 일단 '아이가 마음껏 아파도 되는 사회'부터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암담한 상황을 반영하듯,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요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재정 지원을 비롯한 여러 혜택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 출산 장려 혜택들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아이 부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닐까 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듯해졌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픈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부모가 달려가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아이가 자주 아픈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부모가 아픈 아이에게 자주 달려가는 것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다른 몰라도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부부가 싸우는 일이 없어져야 하고, 그런 싸움이 진절머리 나서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남편 또는 아내와 매번 싸우고 결국엔 직장까지 그만두는 상황에서 누가 '또' 아이를 낳겠는가 말이다.


'어린아이는 원래 자주 아프고,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의 손길이 자주 필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이 우리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 정착되고 스며들어야 한다. 회사에서 아무리 중요한 회의가 목전에 있어도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지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는 분위기가 구축되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정말 진지하게 출산율의 심각성을 논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변화는 나부터


앞으로 복직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한 줄기 목소리라도 보태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누군가 '아이가 아픈데 회의를 미뤄줄 수 있냐'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물론이다'를 외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집에 가서 밤새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부모에 비하면 작고 사소한 걸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각자가 한 걸음, 아니 반 걸음씩이라도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간다면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조금씩이나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팀원 한 명, 팀장 한 명, 임원 한 명, 대표 한 명과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동료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속도가 더디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아이는 마음껏 아프고 부모는 언제라도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출산율 상승의 가장 탄탄한 초석이 되지 않을까? 물론 글을 쓰다 보니 당장 우리 회사부터 막막할 정도로 어려워 보이긴 하는데.... 언젠간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대한민국 회사 어디에서도 '누가 아픈 아이를 데리러 가냐'는 부모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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