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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pr 26. 2023

육아휴직 후 네 달이 지났다

그리고 아내가 셋째를 말했다.

2023. 4. 26. (수)


벌써 네 달이라니


육아휴직 첫 주의 어색했던 느낌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네 달이 지났다. 휴직 초반에 아내가 권유했던 브런치 글쓰기도 미루고 미루다 1월 중순부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심지어 구독도 해주셔서 신기할 따름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졌는데, 틈틈이 쓰다 보니 40개가 넘었다. 사실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앉은자리에서 후다닥 쓰고 퇴고도 없이 잠결에 올린 글들이라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글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의 삶이 깊숙이 배어있어 하나하나 소중한 글들이기도 하다.




나의 육아휴직 점수는?


나: 여보. 나 육아휴직 잘한 걸까?

아내: 완전. 100점 만점에 100점이지.


육아휴직을 한 지 4개월이 되었다는 건 별 생각이 없는데, 일을 쉰 지 4개월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새삼 기분이 이상해 아내에게 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육아휴직 내내 함께 지낸 아내가 만점이라고 말해 주니 기분은 참 좋았다. 직장에서 고과 최고점 받은 느낌이랄까? 현실은 경단남이지만


뒤돌아보면 육아휴직을 처음 고민한 건 둘째 육아 때문이었다. 아내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가정보육으로 첫째를 키우고 있었는데, 둘째까지 태어나면 두 아이를 아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낼까도 고민했지만, 그래봐야 내 퇴근시간이 늦는 편이라 저녁부터는 꼼짝없이 아내가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아내는 '일단 해보겠다'며 괜찮다고 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결심했었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한 지 4개월, 나의 육아휴직이 우리 가족에 미친 영향들을 생각해 보았다.






1. 아내가 자주 웃는다.


육아가 '버티는 것'이 아닌 '함께 해나가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아이를 보는 것과 두 사람이 두 아이를 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육아를 혼자 하면 차려진 밥을 먹는 건 불가능하고 볼일은 문을 열어놓고 봐야 하며 혼자 외출은 언감생심에 몸이 아파도 쉴 수 없다. 그저 남편이든 아내든 한 명이 더 오기까지 버티는 것뿐. 반면, 어른 한 사람만 더 있으면 밥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며 혼자 외출도 할 수 있고 몸이 안 좋으면 잠시 쉴 수도 있다.


대화가 '아이 위주'가 아닌 '어른 위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산후 우울증도 특별한 증상 없이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잠에 때까지 모든 일상을 나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혼자 육아를 하면 대화의 주제나 대상이 아이뿐인데, 남편인 내가 함께 있으니 대화의 주제 또한 어른 간의 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뤘다. 잔소리 포함. 매일의 감정과 상태를 미루거나 묵히지 않고 매 순간 부부간의 대화로 풀어낼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사실 내가 말이 엄청 많은 수다쟁이라서,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아내는 정신없는 순간들은 있었어도 우울할 틈은 없었다고 한다.


나 혼자 힘든 순간이 없다는 것. 언제나 함께 하는 동지가 옆에 있다는 것

야심한 새벽에 잠이 깬 첫째 꿀떡이가 '잠이 안 오니 나가 놀자'며 내 손을 잡아끌던 무서운 순간, 둘째 찰떡이가 3연속 응아로 화장실, 기저귀 갈이대, 방수포, 옷 모두를 난장판으로 만들던 순간, 1시간 가까이 안아서 간신히 재운 둘째 찰떡이를 조심스레 눕히고 있는데 첫째 꿀떡이가 달려와 '찰떡아 자?!'하고 소리 지르는 통에 찰떡이가 잠에서 깨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욕을 간신히 참아내던 순간까지. 모든 빡침과 절망순간들마다 아내와 나는 아무 없이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큭큭대곤 했다. 그만큼, 육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중요했다. 함께라면 웃음이자 추억으로 승화시킬 있으니.


밥 먹다가 잠든 첫째와 둘째를 안고 찍은 사진. 무거워서 힘들 때 웃는 게 일류지



2. 아이가 자주 웃는다.


부모의 웃음은 아이에게 흘러간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자주 웃으니 나도 자주 웃는다. 이렇게 부모가 자주 웃으니 대화의 내용도 모르면서 첫째 꿀떡이도 따라 웃는 것이다. 가끔은 아무 대화 없이 밥을 먹는데 꿀떡이가 괜히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 혼자 웃기도 하고, 방귀를 뀌고 우리를 쳐다보며 '아이 참! 이게 무슨 소리지?!'하고 너스레를 떨어서 다 같이 터져 웃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 전체의 웃음이 많아졌다.


가정에서 배우는 웃음과 즐거움

무엇보다 아이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는다' 뿐 아니라 '웃으면 즐겁다'는 것을 가정에서 배웠다는 것이 기쁘다.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이런 일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고 오직 가정 안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점이 나간 사진에서도 보이는 꿀떡이의 미소 (엄청 신났을 때 표정)



3. 첫째가 동생을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아빠랑, 엄마랑, 찰떡이랑 같이 바다 보러 가요."

둘째 찰떡이가 집에 온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첫째찰떡이가 울면 '찰떡이 우네~'하며 가장 먼저 뛰어가고, 아침에 일어나면 '찰떡이 어디가찌?'하면서 찾으러 다닌다. 요즘엔 그림에 찰떡이도 그리고, 바다로 놀러 가자고 할 때 찰떡이도 포함하는 걸 보면 어느새 찰떡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동생을 미워할 여유 따윈 없었다.

물론 꿀떡이도 처음에는 동생의 등장에 힘들어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본인이 아닌 다른 생물체(?)를 안고 있다는 게 엄청 당황스러웠던 같다. 그럼에도 꿀떡이의 섭섭함(?)이 찰떡이에게 향하지 않을 있었던 건, 아빠인 내가 하루종일 꿀떡이를 전담 마크했기 때문이다.


둘째 찰떡이가 합류하고부터 나는 꿀떡이와 거의 매일 외출을 했다. 월요일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 데려가 오전 수업을 하고 같이 점심을 먹은 후 바로 키즈카페에 가서 오후 늦게까지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화요일부터 금요일은 동물원, 수족관, 육아센터, 도서관, 과학관 근처에 놀러 갈만한 곳은 모두 다녔고, 주말에는 놀이터나 인근 마트에 다녀왔다. 어차피 아내는 산욕기라 신체활동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내가 첫째와 원 없이 놀고 아내는 산후도우미 선생님과 신생아인 둘째를 봤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꿀떡이도 나중에는 아침을 다 먹자마자 '아빠. 나가요'를 외쳤다. '엄마를 빼앗겼다'라는 생각이 뇌를 스치기도 전에 '아빠랑 놀러 가자'의 스위치를 켜버리는 전략이었는데, 이게 적중했던 것 같다. 보건소에서 나오신 간호사 선생님도 첫째 아이를 가만히 관찰하시더니 '아빠가 있어서 첫째가 훨씬 안정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원래 집돌이라고요 ㅠㅠ


꿀떡이와 찰떡이 (꿀떡이는 좋아하는 대상-엄마와 아빠-에게 스티커를 붙여주곤 하는데 이젠 찰떡이에게도 붙이기 시작했다)





4. 둘째가 엄마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전해라

위 3. 에서 쓴 것처럼, 내가 첫째를 데리고 외출하는 동안 신생아인 둘째는 누나 눈치 보지 않고 엄마를 마음껏 누를 수 있었다. 둘째에게는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처럼,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전해라'를 외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한 아이를 돌봄으로써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중






지난 4개월 간 경험한 육아휴직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육아휴직은 아내에겐 고된 육아의 동지가 생기는 든든함이었고, 아이에게는 한결 여유 있고 자주 웃는 부모를 선물하는 것이었으며, 나 자신에게도 남편이자 아빠로서 한 단계 성장함과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육아휴직을 쓸 때 고민도 많이 하고 눈치도 많이 봤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는 비교할 수 없게 지갑도 얇아졌고, 졸지에 흔치 않은 경단남(경력단절남)이 되어 향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후회하지 않는다. 육아휴직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얻었기 때문이다.


굳이 육아휴직의 부작용(?)을 찾는다면, 너무 행복해서인지 출산 후 두 달 밖에 안된 아내가 벌써부터 셋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둘째도 이렇게 예쁜데 셋째는 얼마나 예쁘겠냐며.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여보. 우리 네 명이서도 충분히 행복하잖아. 한 명 더 낳으면 카니발로 차 바꿔야 해...(눈물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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