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둘째 찰떡이 예방접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울 한복판이라 주차는 어려운데 거리는 가까워 버스를 타고 다녀왔는데, 하필 퇴근시간과 겹쳐 버스 안 할머니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할머니1: "애기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가 혼자 애기를 안고 있어?"
나: "애기 엄마는 첫째를..."
할머니2: "애기 발 나왔다. 아이고 예뻐라."
나: "애기가 너무 더워해서 발을..."
할머니3: "애기들은 다 추워. 다 덮어줘야지."
나: "네. 덮어..."
할머니1: "남자들은 애기 안고 있는 게 어설퍼."
나: "아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발끈). 제가 첫째도 맨날 안아 키웠는데!" (사람들폭소 터짐)
할머니2: "그래. 안정적으로 잘 안고 있구먼."
할머니1: "하긴 그래. 둘째 아버지니까 다 알겄지."
버스에서 내려 생각하니 할머니들 특유의 '내 말 들어'식 대화가 웃기기도 하고, 또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게 새삼 신기했다. 정말 정신 차려보니 아이 둘이 눈앞에서 굴러다니고 있달까.
오고 가는 길 내내 쿨쿨 자는 순둥이 둘째
두 번째 키우는데도 잘 몰라요.
육아는 아이마다 새로운 것 같다.
첫째 꿀떡이와 둘째 찰떡이는 정말 다르다. 꿀떡이는 쪽쪽이도 물지 않고 분유도 먹지 않은 반면, 찰떡이는 쪽쪽이도 잘 물고 분유도 잘 먹는다. 잠투정이 심하고 등센서가 민감해서 18개월이 넘어서야 첫 통잠을 잤던 꿀떡이와는 달리, 찰떡이는 70일이 갓 넘은 지금 벌써부터 밤에 6시간이 넘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오히려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굳이 찾자면 목욕을 좋아하고 엄청 먹는다 정도? 그마저도 둘째가 첫째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기저귀 2단계 건너뛰어버림.
그래서 첫째 때의 육아 경험이 둘째 때 딱히 적용되지 않는다. 거의 새로 키우는 기분이다.
잘 모르는데 자신 있다.
첫째 육아와 둘째 육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부모가 두려움이 없다'는 것 정도일 것 같다. 첫째 꿀떡이를 키울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작은 일에도 놀라고 매일 이유 없이 녹초가 되곤 했는데, 둘째 찰떡이를 키우는 지금은 반대로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
결국 두 아이 육아를 하면서 얻은 건 '육아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근거 없는 자신감' 뿐인 것이다.
근거 없는 두려움과 자신감의 희생양들 (다른 이유로 미안하다 얘들아)
키워봐도 몰라요
육아 정보의 홍수와 참견(?) 속에 파묻히다.
요즘은 인터넷에 육아 정보도 많고 맘카페와 같은 커뮤니티도 많아서 좋은 점도 있는 반면, 혼란스러움도 많은 것 같다. 사실 사람마다 아이 성향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원칙이랄 게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육아를 하며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헷갈린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말이다.
키워봐도 몰라요.
키워봐도 모르는 것이 육아다. 첫째 키워봤어도 둘째 모르고, 둘째 키워봤어도 셋째 모르는 게 육아인 것이다. 아이마다 성격도 다르고 시기도 다르고-쌍둥이가 아닌 한- 환경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키워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오만하다. 내가 키워본 것은 내 아이들 뿐이기 때문이다.같은 부모,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집 두 아이도 이렇게 달라서 새로 키우는 기분인데,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오죽할까. 아이들은 각자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유의 성격을 가지고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니 말이다.
부모가 가장 잘 안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스스로를 믿을 필요가 있다. 물론 육아를 하며 종종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수용할 필요도 있지만, 결국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부모다. 열 명 낳아 키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보다, 아이 하나 품고 낳아 키우는 젊은 엄마가 그 아이에 대해서는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본인이 아무리 '좀 키워봤더라도' 아이 부모를 존중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나부터 조심해야 한다. 또래 친구들보다 결혼도 빨리 하고 아이들도 빨리 낳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몇 년 안에 '아빠육아 꼰대'가 되어 '네가 육아를 아냐'를 외치고 다닐 테니.
아. 버스에서부터 '이래 봬도 두 아이 아빠'라며 으스대지 말고 할머니께 조용히 말씀드릴 걸 그랬다.
"두 번째 키우는데도 잘 몰라요"라고 말이다.
뽀로로와 루피만큼 다른 우리 꿀떡이와 찰떡이 (뽀로로 키워놓고 루피 안다고 으스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