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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May 26. 2023

육아휴직 후 다섯 달이 지났다

더 많은 당신들의 이야기가 되길

2023. 5. 26. (금)


5개월, 무언가를 잊고 익히기 충분한 시간


회사, 5개월이면 잊힐 것들

육아휴직을 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이쯤 되니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 치열했던 느낌? 그리고 그 치열함 속에서 항상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건 채로 커피를 들이켜던 내 모습 정도가 흐릿하게 남아있달까. 지금 생각하니 별 것도 아닌 걸로 화를 참 많이 냈다.


겨우 5개월 만에 기억도 못할 일을 가지고 말이다.


육아, 5개월이면 익숙해질 것들

회사가 흐릿해진 만큼 육아는 선명해졌다. 이젠 외출 준비를 하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시간별로 해야 할 일들이 맵으로 정리되는 느낌이다. 아내와는 거의 블루투스 연동 모드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병원에 자주 다녀서 아이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니 평소와 다른 행동이나 습관이 생기면 금방 눈에 띄곤 한다.


(육아휴직 초반에 어려워하던) 아이와 단 둘이 집에 있기나 외출하기? 애가 둘이 된 지금 '단 둘이 있기'는 도전이 아니라 오히려 포상이다. 애 하나만 데리고 있는 것은 어려울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애 둘을 혼자 데리고 있기'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이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금방 익숙해질 것을 괜히 걱정하고 고민했다.


겨우 5개월 만에 익숙해질 일들을 가지고 말이다.



부모의 육아휴직이 '대단'하지 않아지길


출산은 장려하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안돼

육아휴직 후 "아빠가 육아휴직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는 뜻으로 많은 분들이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슬픈 일이다. 부모가 태어난 아이를 보기 위해 잠시 일을 쉬는 것이 대단히 훌륭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 말이다. 평생 쉬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를 가장 필요로 하는 기간이자 출산으로 몸이 약해진 아내가 남편을 가장 필요로 하는 기간, 그 1년을 쉬어가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훌륭한 결정'이어야 한다니.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논의는 쏟아지는데, 정작 아이의 출생이 축하받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단한 결심까지는 필요치 않은 육아휴직이길

부모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래서 그 용기의 대가로 나중에 직장에서 자연스럽고 은근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탓에 '누가 용기를 내냐'를 가지고 부부가 다투어야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멍하니 놀이터 앞에 앉아 아이가 하원하기를 힘없이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출산을 장려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주는 선택지가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두든지, 아니면 일 때문에 아이를 못 보든지의 양자택일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갓 태어난 내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서 '대단한 결심'까지나 필요한 상황이라니.



우리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

우리 부부는 첫째 꿀떡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 많은 고민과 대화를 했다. 육아와 관련하여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유일한 선택지는 가정보육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했다.


둘째 찰떡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더 많은 고민과 대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상황은 가정보육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내의 배가 불러올수록 첫째 꿀떡이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만삭일 무렵 내가 육아휴직을 한 것이다.


과정은 복잡했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아마 복직 후 일어날 일들도 그럴 것이다.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겠지만 단순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육아휴직으로 얻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를 예뻐할 수 있다는 것

육아휴직으로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들을 예뻐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집안일/육아 요정(남편)의 등장으로 출산 후 몸을 추스를 여유를 얻었고, 남편인 나는 머리에 가득 찬 회사일을 자리에 내려놓은 채로 매일 아침 두 아이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두 아이의 예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육아의 가장 큰 축복은 아이의 예쁨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육아휴직은 그걸 가능케 했다.


더 많은 당신들의 이야기가 되길


그래서 나는 '아빠이자 남편의 육아휴직'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아내가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더 많은 아이들이 마음껏 그리고 온전히 예쁨 받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둘째 찰떡이 발 간지럽히기 -꼬물꼬물-


공원에서 신난 첫째 꿀떡이...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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