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꿀떡이의 감기가 온 가족에게 퍼진 탓에 지난 2주 간 병원만 왔다 갔다 했다. 다행히도 꿀떡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미하게 잘 지나갔다.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꿀떡이도 이렇게 두 달에 한 번씩 감기로 고생을 하는데,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과 가족들은 얼마나 자주 아픈 건지 감도 안 온다.
아이가 혼자 아파도 육아가 많이 힘들어지는데, 부모까지 아프니 하루가 더 고단했던 것 같다. 그나마 나는 매일 약이라도 먹었는데 아내는 모유 수유 중이라 약도 못 먹고 쌩으로(?) 감기를 이겨냈다.
소아과랑 약국 VIP 수준인 꿀떡이
육아의 무게는 무겁다
매일 밤 울며 보채는 아이들을 간신히재우고 나면 '육아는 참 많은 희생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울면 안아 재우고, 배고프면 젖이나 분유를 주고, 아프면 간호하는 당연한 아이의 일상들은 사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부모의 희생으로 채워진다. 일단 임신과 출산의 과정부터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가.
아플 때 약을 못 먹고, 졸릴 때 잠을 못 자고, 배고플 때 밥을 못 먹고, 찝찝할 때 씻을 수 없으며,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피곤해도 움직여야 한다.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기른다'라는 말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분명 육아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가벼움이 행복함이 아니듯, 무거움이 불행함은 아니다
흔히 '삶의 무게가 무겁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불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꿀떡이와 찰떡이가 찾아온 우리 가족이 그렇다.
두 아이가 찾아오고 우리 가족의 삶은 분명 무거워졌다. 선택의 순간마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고 또 더 많은 제약이 생겼다. 당연히 부모로서 아내와 나는 이전보다 많은 희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더 풍성해졌다. 매일 아침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함께 눈을 뜨고, 매일 밤 '아빠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아이의 손과 발을 만지며 잠에 든다. 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는 성장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오늘만 해도 둘째 찰떡이가 꿈틀대다 혼자 뒤집기를 성공했다. 첫째 꿀떡이는 이제 곧 배변훈련에 들어갈 예정이고.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와 나의 관계도 더 깊고 풍성해졌다. 수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 결혼으로 '부부'가 된 우리 둘은 아이의 탄생과 함께 '부모'가 되었다. 사랑해서 낳은 두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부모로서 함께하며, 우리는 함께 희생하는 법, 함께 고민하는 법, 그리고 함께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꿀떡이와 찰떡이, 이 소중한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 부부가 '함께' 누리고 있는 행복은 이제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것이 되었다.
부모가 된 우리 부부의 일상은 분명 더 무거워졌지만, 훨씬 더 풍성하고 행복해진 것이다.
아침부터 우는 찰떡이를 지켜보다 토닥여주는 꿀떡이
육아, 그 풍성한 무거움에 대하여
요즘 주변에도 '비혼'이나 '딩크'를 외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물론 각자가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심 안타깝기도 하다. 특히 비혼이나 딩크를 결심한 이유가 주변에서 전해 들은 육아의 '무거움' 때문만이라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무겁지만 더 풍성하고, 힘들지만 더 행복하다고.
과수원 농부가 과일이 무겁다고 바구니를 비우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육아'라는 엄청나게 귀한 과일을 그 무게 때문에 담지 않는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 단단하고 무거운 껍데기에 숨겨진 행복의 알맹이들이 너무 다채롭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육아, 분명 무거운 과일이지만, 부부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함께' 들고 간다면 그만큼 귀하고 행복으로 가득 찬 과일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