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천동잠실러 Jun 22. 2023

아내의 마지막 육아휴직이 끝나간다

기억할 것, 그리고 반복되지 않을 것

2023. 6. 22. (목)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간다는 것


아내의 두 번째 육아휴직이 곧 끝난다. 즉, 우리 부부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맞벌이냐 외벌이냐.


맞벌이는 어려울 것 같다. 둘째 찰떡이가 어린이집에 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그렇다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외벌이'를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내가 육아휴직을 1년 더 연장해야 가능하다.


지난 몇 개월 간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랜 고민 끝에 조심스레 아내에게 '복직을 하는 건 어떠냐'라고 물었다. '진심이냐'는 아내의 말에 진심이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육아휴직 후 지난 6개월 간 해보니, 육아라는 게 힘들지만 내가 못할 건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육아휴직을 연장한다면 회사에서 내 입지는 당연히 안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이익 정도는 아내가 이미 예전부터 감내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나라고 피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둘째 찰떡이가 분유도 잘 먹고 아빠에게도 안겨서 잘 잤다. 이 아이라면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둘째 찰떡이가 달라졌다. 아무에게나 잘 안겨서 자던 우리 둘째가, 100일을 넘기자마자 거짓말처럼 '엄마 껌딱지'가 된 것이다. 찰떡이는 낮이고 밤이고 이유를 모르게 서럽고도 우렁차게 울어댔고, 그 울음은 엄마인 아내가 안자마자 잦아들곤 했다.


품에서 자지러지게 울며 몸을 비틀던 찰떡이가 아내 품에서는 쌔근쌔근 자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넌지시 말했다.


"여보. 당신이 나가서 돈 벌어와라."


원조 엄마 껌딱지와 신흥 엄마 껌딱지의 대결



너무 속이 상했다.


오늘 부엌에서 이것저것 식기를 정리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니 괜스레 속이 많이 상했다. 문득 아내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는 대학원에서 소문난 '씩씩이'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서도 신문사 편집장(editor-in-chief)을 하고, 축제나 행사에서 사회를 보거나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교수님들의 예쁨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내가 아내와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고 학교가 발칵 뒤집힐 정도였으니 (네가 감히?) 


아내는 '똑똑이'기도 했다. 일을 여러개 하면서 공부를 병행해서 변호사 시험(bar exam)에 한 번에 합격했고, 취업도 한 번에 했다. 첫째를 임신한 채 등록한 TESOL 과정을 1등으로 수료했고, 둘째를 임신한 채로 전문번역사 자격증을 땄다. 아내가 공부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나는 '이건 정말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선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양보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양보하고 손해를 봤다. 누구에게나 먼저 밝게 인사할 줄 알았고, 또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았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아내의 회사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좋은 사람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 아내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는 게 너무 속이 상했다. 결혼 전, 아니 사귀기 전부터 보아온 아내의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려서인지,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화가 났다.


차라리 우리가 선을 보아 결혼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학생 때부터의 아내 모습을 몰랐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더 나았을까. 요즘은 아내 뒷모습만 보면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느껴진다.


결혼 전, 업무 전화를 받으면서도 토요일 당일치기로 동해바다를 찍고 오던 씩씩이 아내
무려 사귀기도 전, 학교 공연에서 듀엣을 하던 아내와 나



기억할 것, 그리고 반복되지 않을 것


아내와 자주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중에 두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가 내게 해준 게 뭐 있어!'라고 소리치면 바로 보여줄 영상이라도 하나 만들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만약 올해가 다 지나 정말 내가 복직을 하고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나는 이 일을 평생 마음에 담을 것이다. 아내가 이 소중한 두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는지, 그 내려놓음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하나하나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회사에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하며 상사로부터 '많이 아쉽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휴직 중에 별도 통지나 논의 없이 팀에서 가장 낮은 직급이 된 것을 알고 조용히 쓴웃음을 짓던 순간. 그리고 어제저녁, 아내에게 '복직하는 게 어떠냐'라고 재차 묻던 내게 '내가 엄마로서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이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고 싶어'라고 대답했던 순간까지.


아이들은 아직 어려 모르고 세상은 관심이 없어 모르는 아내의 순간들을 마음에 담아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부디, 시간이 지나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편이든 아내든, 아이가 태어남으로 특별히 기억해야 할 서로의 아픈 조각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2년 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가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아니라 더 다양한 대안이 펼쳐진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속상함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그 풍성한 무거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