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연재) [ 부산을 바꾸는 디자인 ]
(2024.09.09) 부산일보 연재기사 _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1. 부산역
북항-부산역-차이나타운 ‘중구난방’
통일된 디자인 철학으로 ‘연결’ 모색
역 맞은편 ‘텍사스 거리 아치’ 논란거리
눈앞에 역 두고 입구 못 찾는 경우도
택시승강장 기둥 안전 고려 없이 설치
CCTV·안내판 등 중복시설 하나로
글로벌 허브도시를 꿈꾸는 부산의 첫인상은 어떨까. 관문인 부산역, 부산 최대 도시철도 환승역인 서면역, 국내외 관광객이 꼭 찾는 곳으로 떠오른 광안리해수욕장, 개장 10주년을 맞은 부산시민공원 등 부산을 상징하는 장소는 대개 혼란스럽다. 혼란과 무질서는 부산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허브도시를 꿈꾸는 부산이 극복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2022년 도시철도 1·3호선 환승역인 연산역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부산 시민과 공공 디자인 전문가가 참여한 ‘부산 시민공감 디자인단’이 연산역을 공공 디자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내놓는 프로젝트였다. 시민이 진단한 연산역의 문제는 환승이 불편하고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멀어 발 빠짐 사고가 잦다는 점이었다.
디자인단 조언대로 환승 사인 표기를 눈높이에 맞춰 크게 설치하고, 방향이 헷갈리지 않도록 디자인을 개선했다. 그 결과, 3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82초에서 109초로 약 40% 단축됐다. 승강장 바닥에 ‘발 빠짐 주의’ 표지를 눈에 띄게 설치했더니 사고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대규모 예산 투입 없이도 공공 디자인을 개선해 시민 편의가 증진한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 디자인은 심미적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민 안전과 편의에 필요한 도구이자,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부산시도 지난 7월 처음으로 미래디자인본부를 만들고 도시 디자인 혁신에 나섰다. 〈부산일보〉는 창간 78주년을 맞아 ‘부산을 바꾸는 디자인’ 시리즈를 시작한다. 부산 대표 장소 9곳을 공공 디자인 측면에서 점검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부산역은 김해공항과 함께 부산을 찾는 국내외 방문자의 첫 관문이다. 부산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곳이다. 과거 불필요한 조형물이 난립하며 어지러웠던 부산역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북항과 부산역, 차이나타운까지 통일성 없이 단절된 디자인, 이용객에게 배려 없는 공공 시설물 디자인 등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부산디자인진흥원 강필현 원장, 부산디자인진흥원 배기범 진흥본부장, 크로스컬러디자인연구소 박영심 소장((사)동남권디자인산업협회 대외협력부 이사)과 함께 부산역을 점검했다.
■‘단절’을 ‘연결’로
부산역에 내렸을 때 처음 마주하는 인상은 ‘단절’이다. 열차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2곳의 출구를 마주한다. 한쪽은 북항으로 나가는 곳, 한쪽은 도시철도 부산역 방향으로 나가는 곳이다. 부산역을 중심으로 북항과 도심 쪽 차이나타운은 공공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단절되어 있다. 북항의 디자인 지향과, 부산역, 차이나타운의 디자인 지향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다.
관리 주체가 다르고, 조성된 시기가 다르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부산역에서 받은 인상으로 부산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통일된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이 ‘단절’을 ‘연결’로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부산디자인진흥원 강필현 원장은 “부산역은 부산의 관문으로 세계적 수준의 중앙역이 되어야 한다”며 “예전에 비해 부산역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도시의 관문이라는 측면에서는 개선할 부분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일 점검 당시에 도시철도 부산역 방향으로 나오자 부산역을 등지거나 맞은편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들의 사진에 부산역의 현재가 고스란히 기록되는 셈이다.
하지만 부산역에서 바라본 차이나타운의 모습은 혼란스러웠다. 역 맞은편 건물 입면은 커다란 간판과 가게를 홍보하는 문구로 정신이 없었다. 부산디자인진흥원 배기범 진흥본부장은 “결국 부산역에 내렸을 때 부산의 첫인상이 사실상 맞은편 동구 지역인데 간판 정비뿐만 아니라 입면 정비도 동시에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맞은편에 있는 ‘텍사스 스트리트’ 아치 역시 아쉬운 부분으로 꼽혔다. 부산역에 내려 지상으로 나왔을 때 가장 처음 눈에 띄는 시설물이 ‘텍사스 스트리트’ 아치인데, 역사가 깊은 차이나타운과 달리 부정적 이미지가 커 굳이 아치를 존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2017년 아치가 들어설 때도 암암리에 부르던 이름을 양지화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다.
■안전과 연결되는 디자인
부산역의 앞과 뒤도 딴판이다. 부산역 후문 쪽은 역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들로 항상 붐빈다. 기차 시간을 이유로 이곳에서 하차하는 사람도 많은데 위험하고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은 부산역 입구를 못 찾아 헤매기도 한다.
민간 디자인 전문가인 크로스컬러디자인연구소 박영심 소장은 “업무상 부산역을 이용할 일이 많은데 부산역 후문에서 헤매는 외국인을 여러 번 도와줬다”면서 “지도에서 분명히 부산역이라고 표기가 되는데 역을 눈앞에 두고도 입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외부인도 쉽게 부산역 후문에서 부산역 안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표지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안전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또 있다. 부산역에서 공식적으로 택시를 타고 내릴 수 있는 곳은 1층 택시 승강장 1곳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식 택시 승강장이 아닌 부산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안전 측면에서 위험할 뿐만 아니라 차량 정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곳의 펜스 역시 한 소재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다른 소재로 바뀌어 통일감이 없었다. 펜스에는 ‘불법 주정차 절대 금지’ 경고문까지 디자인 요소 고려 없이 설치돼 아쉽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택시 승강장 기둥 역시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돼 아쉽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 한가운데에 택시 승강장 기둥이 있어 시각 장애인이 부딪힐 가능성이 컸다. 승객이 캐리어를 들지 않고 굴려서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인도와 도로 사이 구조물을 설치하는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기능에 따라 중복되는 공공 시설물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CCTV와 가로등, 주소 안내판 등 한 자리에 3~4개씩 중복되는 시설물을 1개로 줄여 합치기만 해도 훨씬 보기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부산디자인진흥원 강 원장은 “부산시가 도심 비우기 사업 첫 대상지로 부산역을 선정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해 부산역 디자인을 혁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디자인 혁신을 통해 부산역이 세계인을 맞이하는 부산다운 글로벌 관문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라고 강조했다.
박영심 디자인씽커
Dynamic Busan에서 2023년 Busan is good!으로 부산의 슬로건이 바뀌었다. 한창 엑스포 준비 중에 고배를 마시고 아이덴티티를 변경하고 있는 중이지만 하루아침에 짠~하고 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산역 일대는 '도시 비우기' 사업 일환으로 도로 및 부산역사, 광장이 많이 달라졌다. 중구난방인 것도 좁은 땅에 변화를 주다 보니 이루어진 다이내믹이다. 행정의 담당부처가 달라서 중구난방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 시민의 배려가 우선이라면 전문기관에서 전체적인 가이드 제안과 행정에서의 인식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진정 시민을 위한 정성이 담긴 공공디자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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