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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반전이야]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여린 홍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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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러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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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출장 중 어느 저녁, 조용한 가정식 음식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해물홍합탕을 맛본 적이 있습니다.

홍합 알의 내실은 한국이 훨씬 듬직하고 맛있지만 양식이라는 것, 타지에서 먹은 날씬하고 작은 홍합은 자연산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겠지요.

올리브오일과 마늘, 토마토의 조화 속에서 바다 향이 진하게 퍼졌고, 테이블 위의 와인 한 잔은 그 모든 맛을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그날의 홍합은 매우 짠 바다의 맛이었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위로이자 깊고 따뜻한 감정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유래한 이 요리는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홍합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정직하게 만들어집니다. 소박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풍성한 풍미를 내는 이 요리처럼, 홍합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준비된 마음에게만 속을 열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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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식탁에서 '홍합'이라는 이름으로 조개를 마주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종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지중해담치', '섭(참담치)', 그리고 '뉴질랜드초록담치'입니다.

[지중해담치]

까맣고 매끄러운 껍데기를 가진 양식 조개로, 우리나라 갯바위나 해안에 흔히 붙어 있습니다. 껍데기는 비교적 얇고, 선명한 남보라빛 광택이 감돌기도 하지요.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조개가 이 종입니다.


[섭(참담치)]

우리 바다의 자연산 홍합입니다. 껍데기가 크고 두꺼우며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을 띱니다. 바위 아래, 깊은 수심에서 자라기 때문에 따개비와 해조류가 껍데기에 붙은 우툴두툴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맛이 진하고 국물 맛이 깊어, 예로부터 섭국, 섭미역국 등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뉴질랜드초록담치(Green Lipped Mussel)]

껍데기의 테두리가 초록빛을 띠는 조개로, 뷔페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름처럼 뉴질랜드에서 양식되는 이 조개는 크기가 크고 껍데기가 둥글고 부드러우며, 맛은 비교적 담백한 편입니다.


담치는 사실 '홍합과'라는 같은 과에 속하지만, '홍합'이라 불리는 섭은 자연산의 이미지, '담치'는 양식 조개의 대표로 나뉘며 그 쓰임새에 따라 인식이 다릅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분류보다 문화와 먹거리, 언어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홍합'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홍합(紅蛤)'은 본래 붉은색 조개란 뜻으로, 겉껍질보다는 안쪽 살의 붉은빛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황빛과 붉은빛이 도는 속살이 바닷속 붉은 조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 것이지요. 지금은 검푸른 껍데기의 이미지만 남았지만, 본래의 이름에는 안쪽 생명력의 색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홍합과 담치의 차이는 결국 그 색과 껍데기의 결, 그리고 바다를 담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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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 바위에 붙어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홍합. 그 작은 조개껍질 속에 바다의 색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홍합의 껍질은 멀리서 보면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검푸른 빛 속에 자줏빛 광택이 감돕니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회색빛이 돌기도 하고, 붉은 기운이 깃들기도 하지요. 그 색은 단단하고 질긴 생존의 표면이면서도, 유려한 물결을 담은 바다의 한 조각처럼 보입니다.


껍질을 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연한 살색, 혹은 은은한 크림빛 속에 선명한 주황색 기관이 보입니다. 그 주황빛은 누군가의 뺨처럼 따뜻하고, 마음 깊은 곳의 체온을 닮아 있습니다. 사람의 살색과 닮은 그 빛은 마치, 우리가 껍질 속에 감추고 살아가는 감정의 색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주황빛은 홍합의 성별이나 번식기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해양 환경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홍합은 바닷속 부유물과 미세한 유기물을 걸러 먹으며 성장하는데, 그 섭취와 정화 과정이 속살의 색에도 반영됩니다. 그래서 그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닌, 홍합이 살아온 바다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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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은 바위에 강하게 붙어사는 부착생물입니다. 끈적한 실 같은 '족사(足絲)'를 분비해, 어떤 파도에도 떨어지지 않는 단단함을 유지하지요. 껍질의 색은 햇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며 내부를 보호하고, 유려한 곡선은 부딪히는 물살을 흘려보냅니다.


그 검푸른 껍질은 어둡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엔 수천 번의 파도를 이겨낸 묵직한 빛이 있습니다.

홍합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파도에도, 바위에 부딪혀도,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지요. 그 단단한 껍데기를 스스로 열지 않으려는 모습은 마치 사람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꼭 다문 마음. 하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깊은 국물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품고 있는 것, 그것이 홍합이 지닌 또 하나의 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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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은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겉은 단단하고 어두워 보여도, 속에는 따뜻한 주황빛이 깃들어 있다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껍질 속에 어떤 바다를 품고 살아가는지,

그 빛은 때때로 입속의 국물처럼, 뜨겁고 진하게 다가옵니다.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도 묵묵히 빛을 지키는 홍합처럼,

우리도 저마다의 바다를 품은 색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네 마음은 무슨 색인가요?







*이미지 및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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