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수분방패오이색
어릴 적 화장실 창가에 늘 놓여 있던 연녹색 비누. 그것은 바로 '오이비누'였습니다.
엄마는 여름철이면 그 비누로 손을 씻고 얼굴을 닦으셨고, 나는 그 향이 싫지 않았습니다. 맑고 깨끗한 오이 특유의 향이 비누 거품 속에서 피어오르며, 마치 한여름 대야 속 얼음물처럼 몸과 마음을 식혀주던 기억.
그때의 오이비누는 계절의 청량한 기호였고, 어린 날 감각의 일부였습니다.
이런 기억처럼, 여름날 얼음 동동 띄운 오이냉국에서, 도시락 반찬 속 오이무침에서, 또는 수분 가득한 피부 팩까지 – 오이는 언제나 싱그러움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는 오이의 색, ‘초록’이 있습니다. 자연의 오이와 오이비누 색을 비교해 보면 조금 많이 인공적인 색 같네요^^
오이 껍질을 자세히 보면, 표면 위에 오돌토돌하게 솟은 작은 돌기들이 있습니다. 이는 '돌기' 혹은 '가시'라고 불리며, 오이가 자라나는 동안 자신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연의 장치입니다.
이 돌기들은 오이의 품종에 따라 크기와 밀도가 다르며, 갓 수확한 오이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지요. 손끝으로 문지르면 까슬까슬한 이 감촉은 오이의 싱그러움, 즉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옵니다.
신선한 오이는 이 돌기가 마르기 전, 즉 촉촉할 때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오돌토돌한 표면은 눈으로도 손으로도 느낄 수 있는, 오이만의 입체적인 색감입니다.
오이의 껍질은 맑고 진한 초록빛을 띱니다. 성장 초기에 연둣빛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짙어지며, 외부의 자극이나 햇볕에 따라 얼룩덜룩한 무늬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초록 껍질은 단지 보기 좋은 색을 넘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일으키고, 내부의 수분을 보호하며, 벌레나 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자연의 방패이기도 합니다.
오이는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껍질이 더 진해지고 탄력이 생기며, 초록의 밀도는 신선함의 지표가 됩니다.
껍질을 벗기면 드러나는 연초록 속살은, 마치 어린잎 같은 여린 빛을 띠고 있습니다. 수분이 가득 차 있으며, 안쪽으로 갈수록 거의 투명한 연녹색으로 바뀌는 이 층은 오이의 청량한 맛을 결정짓는 부분입니다.
이 색은 물처럼 순수하고, 바람처럼 가볍습니다. 그래서 오이의 속살은 더위에 지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자연의 해열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건조한 날씨에는 오이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피부가 푸석해질 때, 수분을 머금은 오이 한 조각은 마치 자연이 내어주는 작은 샘물처럼 느껴집니다. 공기가 메마를수록 초록의 청량함은 더 깊게 스며들고, 오이의 색은 단지 보기 좋은 초록을 넘어서 촉촉함을 회복하는 감각의 색이 됩니다.
오이의 초록은 단순한 채소의 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화, 수분, 치유의 색입니다.
시각적으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리적으로는 몸의 열을 내리고, 상징적으로는 '맑음'과 '자연스러움'을 대표합니다.
피부에 얹었을 때, 입에 넣었을 때, 눈에 들어왔을 때 – 오이의 색은 늘 '시원하다'는 감각으로 번역됩니다.
오이는 말없이 계절을 건넙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지쳤을 때, 그것은 무심하게도 가장 정직한 색을 내며 곁에 있습니다.
그 초록빛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얼마나 촉촉한가요?”
한 조각 오이의 색이 시원한 여름 오후가 되듯,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작은 초록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이미지 및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