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한눈물빛송진색
어릴 적 소나무 숲에서 마주한 빛나는 물방울. 그것은 마치 유리알처럼 반짝이며, 아이의 눈길을 붙잡곤 했습니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면 끈적이던 그 작은 방울은, 장난기가 어린 손에 남아 긴 여름 오후 내내 지워지지 않았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반짝이던 방울이 나무가 아파서 흘리는 금빛 눈물, 바로 송진이라는 것을.
송진. 나무가 상처 입었을 때, 그 틈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점성의 액체.
햇살을 받으면 꿀처럼 반짝이는 그 색은 단지 고체화된 진액이 아니라, 숲의 시간이 굳어가는 장면입니다.
처음 나올 때 송진은 밝고 투명한 연노랑빛, 시간이 지나며 점점 진한 황갈색, 호박색, 그리고 붉은빛을 띠게 됩니다. 그 변화는 마치 인간의 감정처럼, 상처에서 진심으로 옮겨가는 빛의 단계 같기도 합니다.
송진은 단순히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치유의 도구입니다.
나무는 껍질이 벗겨지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내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송진을 분비합니다.
이 송진은 공기와 닿으면 점차 굳으며 상처 부위를 감싸고, 외부의 병균이나 곤충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천연 방패 역할을 합니다. 말하자면, 송진은 나무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흘리는 금빛 피와도 같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색으로 남깁니다. 송진의 색은 바로 그 본능적 생존의 흔적입니다.
송진의 색은 자연 속의 화학입니다. 그 속엔 테르펜(Terpenes), 레진산(Resin acids), 휘발성 정유 성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산소와 만나 산화될수록 색은 짙어지고, 고체화되며, 점차 향도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막 흘러나온 송진은 레몬처럼 밝고 상큼한 향을, 굳어갈수록 나무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는 숲의 내음을 닮아갑니다.
송진은 나무의 피이자, 자가 치유의 흔적입니다. 상처를 입은 나무는 자신의 수액으로 상처를 막고, 곰팡이나 곤충의 침입을 차단합니다. 이때 드러나는 송진의 빛은 단지 치료의 도구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의지의 색입니다.
그 색은 때로는 투명하고, 때로는 호박처럼 금빛이고, 어떤 날은 붉게 물듭니다. 그 모든 빛은 나무가 겪은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송진은 자연의 영역을 넘어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야구 경기에서 투수들이 사용하는 송진가루(로진백)는, 손에 땀이 많을 때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공을 더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송진가루는 마찰력을 높이고 손에 뽀송한 감촉을 남기며, 불규칙한 공기 흐름 속에서도 일정한 제구력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날아갈 때, 그 순간의 집중력은 바로 송진이 만든 작은 마법일지도 모릅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같은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들은 송진 없이는 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송진은 활털과 현 사이의 마찰을 만들어 주며, 음을 발생시키는 결정적인 도구입니다.
활에 송진을 문지르면 마치 투명한 금빛 먼지가 내려앉듯 빛이 퍼지고, 연주자가 활을 켤 때마다 그 빛은 소리로 변해 울려 퍼집니다.
특히 겨울날 따뜻한 연습실 안에서 송진 냄새가 은은하게 퍼질 때, 음악은 단지 음이 아니라 향과 촉감, 기억이 깃든 감정이 됩니다.
송진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악기의 영혼에 닿는 다리처럼 느껴집니다. 매번 활에 묻힌 송진 한 겹은, 연주자의 손끝에서 사랑과 슬픔, 기쁨과 고요함이 되며 울림으로 피어납니다.
아이 손에 묻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던 송진. 하지만 그것은 나무가 자신을 지키려 흘린 정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흔적은 사라져도, 송진의 향은 가을 산길 어딘가에서, 캠프파이어 불꽃 사이에서 다시 떠오릅니다.
그 색은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간의 감촉, 그리고 치유는 언젠가 금빛으로 굳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천 년 전 흘러나온 송진이 땅속 깊이 묻히고, 압력과 시간이 더해져 굳어진 것이 바로 호박(琥珀, Amber)입니다. 고대의 나무가 남긴 그 눈물은 단단한 보석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사람의 목에, 손에, 유물 속에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작은 벌레나 식물이 그 안에 갇혀 영원을 살아가며, 어떤 호박은 시간 그 자체를 봉인한 듯 깊고 투명하게 빛납니다.
그 황금빛 호박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상처일지라도, 그것이 진심을 품고 흘러나온 것이라면 결국엔 빛나는 무언가로 남는다는 것을.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송진 같은 금빛 기억이 굳어 호박이 되기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무게와 따뜻함으로,
소중한 당신의 하루를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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