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역할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1℃ 상승하였다. 과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전환되는 약 1만 년 동안 기온이 4∼5℃ 상승한 것에 비하면 20∼25배 빠르다.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우리의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인류의 생존 위기를 초래하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경제, 사회 등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빌 게이츠는 2015년 3월 TED 강연에서 전염병을 예고하면서 인구 감소와 생태계의 변화를 우려했다. 디지털 혁명 이후, COVID-19로 인한 다양한 환경적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COVID-19 이후 달라진 소비문화에서 온라인 쇼핑, 배달 음식 등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비대면·언택트 사회가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의(衣), 식(食), 주(住)의 변화는 물론이고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움직임으로 삶의 생태계의 큰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즉, 전 세계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2021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1,000명 중 82.3%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지난 4월에 실시한 대한상공회의소 설문 조사에서는 MZ 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10명 중 6명이 추가 지불을 하더라도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경영 실천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고 답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친환경 소비시대, 부상하는 그린슈머를 공략하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그린슈머는 글로벌 소비자의 53%로 팬데믹 이전보다 20%가량 증가한 수치인데 이는 위기가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친환경 가치소비’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지속가능성이란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 그리고 환경적인 측면이 골고루 다 고려되어야 하는 디자인 접근 방법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환경적인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부족하기에 “환경”은 늘 뒷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디자이너로서 환경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여 디자인 혁신을 이루어 낼 전략이 필요하다.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그의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디자인은 상품과 환경, 나아가서는 디자이너 자신까지도 형성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디자이너는 소비자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인 것이다. 국내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일회용 어메니티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하면서 제품 디자인팀과 포장재 개발팀이 협업하여 지속가능 디자인의 비전과 목표를 적용한 ‘리필 라이프’를 고안했다. 이러한 사례는 ‘지속가능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임을 시사한다.
1970년대부터 환경의 위기로 지속가능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지만, 생태계 문제에 집중한 그린 디자인, 에코 디자인 등으로 재료와 표면적인 부분만을 다루는 친환경 디자인 연구 위주였다.
나이엘 파버(Niels Faber)는 2005년에 발표한 저술을 통하여 생물학적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지속되는 구조를 지닌다고 적시하였다. 지속가능성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들과 인공적 시스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자, 어떠한 인공물이 그것이 실재하는 환경과 관계하여 드러내는 속성의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이젤 휘틀리(Nigel Whiteley)는 디자인은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과도한 디자인은 결국 환경의 파괴를 불러온다고 주장하였다. 녹색 사고를 실천하는 그린 디자인은 ‘환경을 위한’ 디자인이며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겨져 하나의 상품을 포장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그린워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만큼, 지속가능성의 본질이 산업 개발과 인간의 욕구 추구에 의해 변질되거나 퇴색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급격히 진행되는 환경오염과 자연 훼손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경제 개발로 인간 중심의 접근과 지속가능성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디자인 중심의 고찰이 필요하다.
환경(Environment)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국외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타고니아’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탄소 네거티브 실현’을 선언하고 탄소 배출에 대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금전적인 책임을 지는 사내 탄소세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는 기후변화 이슈를 ‘마이너스 탄소 배출’로 해결하려는 제도로 자사와 협력업체들이 발생시킨 이산화탄소의 총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없애겠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최우선 캠퍼스 구축 계획으로 워싱턴 MS 본사 캠퍼스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100% 무탄소 전기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제발 이 옷을 사지 말라(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울 정도로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재킷의 60%는 재활용 소재를 이용했지만, 이 과정에 탄소 20파운드(약 9㎏)가 배출됐고 아무리 오래 입다가 버려도 3분의 2는 쓰레기가 된다”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광고 전략은 가치 중심 소비를 하는 MZ 세대에게 적중해 코로나 팬데믹에도 오히려 가파른 매출 증가로 반영되었다. 파타고니아는 매년 매출 1%를 ‘지구에 내는 세금’으로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리사이클 원단과 유기농 목화를 바탕으로 의류 제품을 생산하며 적극적인 ESG 실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Social)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국외 사례는 ‘맥도널드’와 ‘애플’이다. 맥도널드는 2022년 10월 QSR(Quick Service Restaurant) 업계에서 처음으로 ‘뚜껑이’를 도입하고, 플라스틱 빨대를 요청하는 고객의 경우에만 제공하는 등 ‘빨대 은퇴식’을 진행하여 114.6톤(t)에 달하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량을 줄였다. 환경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이어온 ‘한국의 맛(Taste of KOREA)’을 통해 지역 상생 활동과 소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사회 공헌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애플은 인종차별 장벽을 무너뜨리고, 비 백인 커뮤니티가 직면한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1억 달러(약 1,097억 원) 규모의 ‘인종 간 평등·정의 이니셔티브 프로젝트(Racial Equity and Justice Initiative·REJI)’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흑인 대학을 위한 사상 최초의 글로벌 혁신 및 학습 허브인 프로펠 센터와 디트로이트 지역 학생들의 코딩 및 테크 교육을 지원하는 Apple Developer Academy, 그리고 흑인 및 갈색인 기업인을 위한 벤처 캐피털 펀딩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애플로부터 2,500만 달러를 지원받아 탄생한 가상 플랫폼과 애틀랜타 대학 센터 내 실제 캠퍼스에서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 등을 갖추게 될 것이다.
지배 구조(Governance)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국외 사례는 ‘에버레인’과 ‘올버즈’다. 에버레인은 미국의 의류업체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공개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극단적 투명성을 강조한다. 제품 제작 과정에서 드는 비용인 원료, 운송비 등 세부 단가와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전부 공개한다. 지속가능한 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노력과 합리적인 가격, 윤리적 공정으로 대외 이미지를 향상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어 매년 긍정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버즈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선도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100% 자연 식물성 대체 가죽인 ‘플랜트 레더’와 같은 소재 혁신에 앞장서며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 경영으로 공정 노동 및 물, 화학제품, 동물 복지 및 추적 가능성과 투명성 등 5가지 주요 항목을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올버즈는 전 세계 최초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은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이하 IPO)로 나스닥(NASDAQ)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설립 단계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에만 수여하는 비콥(B-Corp)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Public Benefit Corporation)이다. 올버즈는 지속가능성, 심플한 디자인, 편안함의 3대 핵심의 가치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인정과 기업공개는 자연스럽게 기업 경영에 있어 주요 이해관계자 중 하나로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을 지키려면 가시성이 드러나는 요소가 필요하고 제일 눈에 띄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사회’적으로 지킨다면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배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이기에 어떻게 포장하여 홍보하느냐에 따라 기업 이미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ESG는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방법으로 실천되고 평가받는다. 이는 가치 있는 소비가 이루어지는 맥락과 같은 흐름이라 볼 수 있다.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사례들은 브랜드 가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혁신 전략을 세우고 실천한다. 소비자를 눈속임하여 악용되는 사례가 없도록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산업혁명 중입니다만,
'지속가능성'을 외치며 발버둥 치고 있다.
지속가능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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