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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걷다

#글#에세이#일기

by 공영

그 일이 있은 후 나의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삶'이라는 말 대신 '생'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라지다. 살다. 삶. 나의 삶.

삶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나,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삶보다는 생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난 기분. 여전히 사라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보다는 역시나 다시 태어난 기분이 더 강하게 드는 요즈음이다.

지난 2년의 시간은 내게는 죽은 것과도 같은 삶이 었다. 그때, 그래서 알았지.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그보다 사는 것이 나름 꽤 괜찮은 일임을. 지금은 정리 중에 있지만 다시금 내 삶을 부여받아 살고 있는데, 이전의 삶을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나는 죽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그래. 다시 태어난 기분.

나라는 인간이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쉽게 변할리가 있겠는가. 난 여전히 가죽자켓과 워커를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틈틈이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쉬는 날엔 사진도 찍고.

그러나 이전의 나는 죽었다. 난 새로이 태어났고, 다시 생을 걷고 있다. 비슷하지만 새로운 이 생은 전의 삶과는 달리 내게는 조금 소중하고 즐겁다. 아침에 자고있는 아이를 보며 다 잡는 마음. 퇴근 후 웃으며 내게 안기는 아이를 보며 다 잡는 마음. 그게 조금 나의 새로워진 모습일 뿐.
뭐, 역시나 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어느 한 구석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지만 말이다.

손. 2016
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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