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그 후.
남들이 가고 싶어했고, 관계를 맺고 싶어했던, 업계에서 알아주던 곳에서 난 첫 시작을 했었다. 다행히도 대학시절 몇번의 인턴 덕에 조금은 쉽게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열정 페이'가 당연시 되던 바닥이었지만, 당시 내게는 꿈과 열정이 있었고, 어렸기에 패기가 있었고, 그랬기에 철도 없어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부족한 돈은 부모님의 힘을 빌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게 부모를 마르게 한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폼생폼사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사랑을 잃고 나는 그곳을 관두었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직장을 나왔지만, 실상은 실연의 아픔이었다. 그게 난 쪽팔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동료들이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오는 것이 부끄러웠고, 나름의 배려를 해주는 것도 불편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나 다시는 그런 직장도, 동료도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난 이때, 스물넷의 시기를 내 생애 가장 빛나던 시간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단 특별했던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신 오지 않을 그 모든 시간을 일컫는 말이었다. 꿈이 있고, 패기가 있던 나, 멋졌던 직장, 존경하는 분들, 어린 날 친동생처럼 챙겨주고 생각해주셨던 분들, 그리고 그때의 나와 특별한 시간을 보냈던 그때의 당신.
직장도, 사랑도 잃고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때의 난 완전한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곳에 가서도 그러지 못했지만. 당시 난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생각했기에 당신과의 연락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남겨둔 채. 그렇게 내 잘못된 여행은 시작되었다.
(김녕 앞 바다, 2013)
모든 걸 정리하려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날 되돌아보면, 그것 역시 나를 향한 허세의 행동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카페에서 탄산수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그 시간을 사진으로 찍고. 지금 보니 모든 게 다 허세였다. 오직 나를 향한 허세.
결국 제주에서의 며칠은 의미를 상실한 여행이 되었다.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은 좋은 경험과 기억이 되었지만, '리셋'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던 여행의 의미는 무색해졌다. 난 여전히 그 사람을 잊지 못했고,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내 사랑은 홀로 진행중이었다. 그런 내게 모질게 하진 못했으니 그 사람이 대단한 보살이거나 아님 모질해 했음에도 눈치가 없었던 나였거나 둘중 하나였을 것이다. 내가 당신이었다면 난 내게 별의 별 말을 다 하며 매정하게 굴었을 텐데.
제주여행 후, 난 새롭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난 허세로왔고, 내게 빠져있었다. 내가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내 인생이 나아졌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지금 난 후회는 없다. 단지 이런 저런 아쉬움만 있을 뿐, 순간순간 난 최선을 다해 살았고, 허세로운 나도 좋았다. 어쩌면 그런 내가 있었기에 그때 당시 느꼈던 외로움의 갈증을 적셨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랬던 나였기에 삶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