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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Apr 24. 2017

일주일 중 며칠은

토성을 걸어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냄새도 더 이상 나지 않자 저는 책상 앞에 가지런히 앉았습니다. 지난날의 유한한 씁쓸한, 아직 남아 있는 편지를 펼쳐 한 자 한 자 다시 읽었고 곧 가슴이 먹먹했졌습니다. 찬란했던 봄이 겨울이 되었고 제로에서 간신히 몇 발자국 걸어 나왔는데. 모든 것의 돌고 도는 반복이 저는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거든요. 또다시 사랑이란 감정에 지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그가 사라진 공간이 꼭 홀로 세상에 남겨진 느낌이 들어서 기어이 어-ㅇ--ㅓ-ㅎㅇ으- 하고 삐져나오는 것을 어설프게 막고서 오열을 토해내야만 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또 이렇게 기대 버리고 사랑해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언제라도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는 모든 간사한 마음들이 밉습니다. 이렇게 또 나약해지는 것 같은 이 감정이 미웠습니다. 또 그는 잘 있나 싶어서 나와 그의 모습이 점점 더 희미해져서, 모든 꿈 꿨던 것들이 다 부질없어서 살아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기 그대로 이렇게 이 곳에 있는데 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돌고 돌아서 과거가 되어버린 사건들과, 그 모든 순간들의 생성과 소멸이 눈 앞에 펼쳐져서 저는 적나라하게 그 장면들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눈 앞에서 수많은 장면들이 영화같이 지나가고 말았지요. 마음이 무너져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글귀를 예전에도 대입시킨 적이 있어요.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믿었고요, 결국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더 강해져야만 하는데도 저는 아무래도 무기력하고 약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 멀리 빛나는 아름다운 빛을 그리워하고 원하지만 실은 알고 있어요. 결코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것과 혹 그곳에 도착한다 해도 그 빛은 제가 원하던 빛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원하던 순간들에 도착하더라 해도 결코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요. 다 알아서 슬픈 겁니까? 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만을 잘 살아내자고 해놓고, 미래를 어느새 또 걱정하고 말았습니다. 인생 그거, 한없이 허무하고 먼지 같은 거라고 말하고 쓰면서도 그저 잘 살아있고 싶어서 욕심이 났다가 비워냈다가 또다시 불안해지고 아주 잠깐 안정을 찾았다가 또 이내 끊임없이 울렁거려서 힘들어요. 정말이지 웃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은 끝내 왜 울음을 가져오는 걸까요? 왜 저는 일주일에 며칠씩이나 토성을 걷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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