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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May 31. 2017

A Good Day

5월 끝

인간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어떤 불멸의 것에 대한 지속적인 신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에 대해 신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는 온통 매력 없는 이유들 뿐이에요. 죽는 것보다 죽어있는 것처럼 사는 게 저는 더 끔찍하게 느껴져요. 평온한 일상에서 간헐적으로 숨이 막히는 이유를 알아내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깨닫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하나.

D에서 지낼 때, 더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목까지 차오르면 쇼핑몰 구석에 있던 반짝이는 타이 레스토랑에 가서 자해 수준으로 태국식 고춧가루를 뿌려 팟타이를 먹곤 했습니다. 당연히 매웠고 눈물과 땀을 뚝뚝 흘리면서 아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어치웠지요. 점원들은 그런 저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괜찮냐고, 물을 계속해서 따라주었습니다. 제 안의 슬프거나 답답한 그 어떤 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찾은 것이 그것이었는데 그때 전 D라는 장소를 탓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어서 이런 습관이 생겼고,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면 해소된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예를 들면 술이나 자전거 타기나 어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것을 D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엊그제, 저는 아주아주 매운 걸 먹고 속을 다 뒤집어 놓고 싶었어요.


둘.

옛 연인과 헤어지기 전, 우울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평온한 들판 한가운데에 꼬챙이에 꿰여 걸려있는 생고기 같다는 기분을 느껴야 했어요. 그 이유를 그와 저의 관계 속에서 찾았습니다. 원하는 어떤 것들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우리 사이가 우리의 타이밍이 우리의 현재가 현실이 문제라, 그래서 숨이 막히는 거라고 판단했어요.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장소나 계절,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리듬 자체이며 죽음이 아닌 이상 아무리 이동을 해봐도 나 자신으로 부터는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나는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나를 달래야 할지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확신에는 의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완벽하게 확신하기 위해 의심을 해보지만 스스로 원하는 답이 있으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의 육감과 우연과 운명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인 여름은 지독하게 저를 환멸의 중심으로 질질 끌어가고, 한없이 우울한 모습으로 진흙 속에 발을 딛고 멍하니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요. 도대체 숨이 막히는 이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요? 내 삶이 매번 이렇게 휘청거리는데 누군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찰나의 황홀과 진득하게 미지근한 불안과 고통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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