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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Dec 26. 2017

연말

메리 메리 메리한

행복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아서,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예쁘고 싶어서 입은 옷이 너무 얇아서, 무슨 표정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다 알려고 드는 내 욕심이 미워서, 불안함이 당연한 미래가 신경 쓰여서 이 모든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 못마땅해서 나는 정말로 행복할 수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나는 충분하게 감사한 시간들을 보냈다. 따듯한 곳에서 배불리 음식을 먹고, 음악도 즐겼으며, 영상도 보았고, 판타지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 노트에 오늘 날짜를 적고 어라 숫자가 이상하다'라고 적었다. 이천십칠년십이월이십육일 나는 현재 나에 관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적어 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고 내가 진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잘, 거의 알 수가 없었다. 약속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고 선물도 준비했지만 예를 들면 줄 사람 없는 편지를 쓰지 못한 느낌으로. 사랑하는 나의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은 편지를 적어 내리지 못한 채로. 입에서만 맴도는 얘기들을 어여쁜 글자로 잡아두지 못해서 우울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배달된 점심 도시락을 먹었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나씩 정리했다. 각자의 삶들은 대단하고, 거침없기도 하고, 거창해 보인다. 하지만 부쩍 요즘 삶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듯한 것이 별거라는 생각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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