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걱정했던 업무들은 별일 없다는 듯 시간을 가로질러 흘러갔고 앞으로 내게 주어진 수많은 과제들은 처리하기도 전에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에 뒷목은 뻣뻣해졌고 뇌를 구성하는 혈관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 순간 펑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혹시 앞으로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줄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그는 건강했던 지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요즘 주변의 일들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이 가득 펼쳐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같다고 그랬다.
최선의 상황에 있으면서도 마냥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나 자신이 너무 싫다고 벌게진 눈으로 있으니 그는 '나는 네가 좋다'라고 말해주었다. 고마웠다. 손글씨로 일기를 쓰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날씨는 조금씩 따듯해져서 가벼운 옷차림이 되었지만 공기는 무거워 보였다. 일년의 1/4이 지나가고 이제 4월을 앞두고 있다. 어딘가로 떠나는 기분을 좋아했었는데,...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한없이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켜야 할 것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위스를 갈까 크로아티아를 갈까? 하고 친구가 물었다. 혼자 2-3주 정도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살다 보면 상황이 너무 겹겹이 쌓여,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을 때 다녀오라고 했다.
- 그래, 어디든 가고 싶을 때 갈게
그 대답이 참 좋아 보였다.
월요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요일엔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죽을 뻔했다. 버틴 것 자체가 기특했다. 수요일에는 어떻게 또 살아냈다. 오늘은 아직 목요일. M이 보고 싶다. 침대로 걸어 들어가면 그다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