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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Mar 29. 2019

아아, 봄이구나

아무렇지 않게 목련은 피고

가득 떠 있는 검은색 점들은 모두 까마귀였다.

그들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축 쳐진 군청색의 하늘이었다.


글루미 선데이와 해피 투게더, 글루미 선데이와 해피 투게더가 반복되어 흘렀다.

그 영화를 누구랑 봤더라,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올려다본 얼룩덜룩한 하늘은 여러 겹으로 쌓여 축 늘어진 코끼리 시체를 떠올리게 했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한 층 더 색이 진해졌고 그 두툼한 공간은 투명에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 멀리 마지막 까마귀 떼가 서둘러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복권 판매점의 간판을 향해 걸었다. 터무니없이 멀게 느껴졌다. 곰곰이 숫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 이천십구년의 몇 번째 날인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내가 며칠을 살아왔는지도.

토요일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관 앞에는 비현실적으로 하얗게, 한 가득 아무렇지 않게 목련이 피었다.


닳아버린 책 한 권을 들고 소파에 누워있었다. 단테는 아기가 안기듯 내 심장 위로 올라와 따듯하게 나를 안아주었는데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그는 금세 내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어버렸고 나는 꼼짝 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모두 잠이 부족한 것 같다. 고양이들만큼 우리가 꿈꾸는데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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