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의 1008번
오랜만에 멀미다 브레이크에 발을 댔다 땠다하는 차를 타면 나는 언제나 멀미를 한다
낯선 풍경, 창 밖으로 양떼구름이 넓게 펼쳐져 있는 하늘을 보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이방인 놀이를 하기로 했다
나는 버스 하나 타는 것도 서툴렀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
결국 내려야 할 곳을 놓쳤지만 다행히 약속한 시간에는 도착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왜 이전엔 이런 걸 못 느꼈지 하는 신선함도
오늘 내가 한 일들은
병원을 들렸다가, 사진전에 간 일
그곳에서 여유롭게 사진을 보고 또 찍은 일
커피도 한잔 하고 책도 조금 읽고
논이 보이는 곳으로 가서 검정말(매송이)을 타는 일
노란 터널을 꿈꾸듯 지나는 일 그것도 세 번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린 일
시원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일
신기하게도 아빠가 말을 타던 모습을, 그 표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냄새나 목소리나 그 밖의 것들은 희미한데 이상하게 아빠의 그 웃는 표정만큼은 종종 떠오른다 때론 내겐 무서운 또는 엄한 아버지였지만 왠지 그때만큼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비쳤다랄까
말을 타면 그때로 돌아가 어린 내가 되는 기분이 든다 뒤를 돌면 든든하고 안락한 내 가족이 웃고 있을 것 같고, 아무런 걱정 없는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늠름한 말에 올라타 멀리 풍경을 바라보니 어디든 뛰어갈 수 있을 것 같고
쓸데없는 욕심들을 반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식탐도 사라지는 것 같고..
이젠 좋은 꿈을 꾸고 내일을 또 맞이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