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억 년을
요즘에는 딱히 선명하게 남은 꿈이 없다. 기억해내고 싶은 꿈이 없다는 말이다.
뭉개져서 기억이 아예 나지 않거나, 다시 기억해 내기 싫은 불길한 느낌의 꿈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기까지 시간은 멈췄다가 느리게 흘렀다가 재빠르게 지나가기를 랜덤으로 반복한다. 하루 종일 자전거나 타고 싶다.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서. 매여있는 게 없다 보니 자꾸 또 떠나고 싶다. 주머니는 비었는데 마음까지 비어버린 건지, 무언가로 채워 넣고 싶다. 그래서 배수아 작가의 책을 여러 권 구입했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녀처럼 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잘 모르지만. 아예 나는 그녀를 모른다고 해야 맞겠다.
이제까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그러니까 컴퓨터에 자동으로 올려진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훑어봤다.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내 모습들이, 참 좋았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이미지화되어 정확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다녔던 여러 곳들과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기억들이 보고 있으니 감정들이 하나씩 되살아나서 찰나의 행복감이 스쳐갔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고 처절하게 슬픈, 희극과 비극이 골고루 섞인 나름 만족스럽게 살아온 것 같다. 앞으로 이보다 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찍게 될까? 아니면 이제까지의 행복들만큼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 무섭다. 아니 두렵다. 예전에는 어찌 마냥 기대만 되고 그랬을까 확실히 나는 연못에 사는 물고기나, 체리농장의 종달새로 태어났어야 했다. 그냥 그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경우에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또 만족을 느끼고 인정을 받고 그렇게 스스로를 찾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무리 살아도 저 지경에는 이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밤에는 아주 오색빛깔의 디즈니풍의 꿈이라도 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