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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Dec 20. 2016

12월

나의 뇌는 조금씩 부서지나 봐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안녕. 아름다운 동화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냈는데도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으로, 그렇게 살아갈게.

- 우리 모두의 정귀보 中 -


저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야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막 나온 그 시점. 나는 두바이로 떠나기 전 몇 주동안 서울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그때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H는 엊그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잡은 H가 멋있고 부럽기도 했다.


H는 종종 내가 있는 두바이로 출장을 오기도 했고, 함께 타지로 출장을 가기도 해서 추억들이 꽤나 많았는데 얘기를 하다 보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H는 내게 너 정말 그 사람 기억 안 나? 하고 물었고 나는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H가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뒤,

자신이 머물게 된 레지던스 호텔이 3년 전쯤에 우리가 함께 묵었던 같은 숙소라며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H는 내게 여기 기억나?라고 물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H는 우리 여기 같이 묵었었잖아! 하며 내가 Y와 같은 방을 썼다고, 어떻게 기억이 안나냐고 신기하다고 했다. 나도 정말이지 신기했다. 어째서 기억이 아예 아주 조금도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을까?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여러 번 그랬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슬픈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자꾸만 페이지들이 중간중간 찢겨서 이야기가 끊기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끝으로 가겠지만.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 이제는 정말 끝인 건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애초에 그날, 그 순간에 모든 것은 그냥 끝장이 났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 흐르듯이 가보자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겠지만, 절실하지 않으며 더 이상의 어떤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금이 간 조각은 어쩌면 금방 다시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조각은 애초부터 깨질 운명의 조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어쩼든 이어지는 느낌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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