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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Jan 19. 2017

두서없는 기록

놓칠세라, 틈이라도 주면 놓칠세라

일찍이 철이 들어버려서, 뭣도 모르는 나한테 구박만 많이 받았던 어리고 예쁘고 하얗고 씩씩한 내 동생 테오. 언니 같은 테오. 나는 가끔씩 뜬금없이 그녀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내곤 한다. 어리광이다. 답 없는 투정이다. 그녀는 나의 팬. 그녀는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T는 I을 떠나 E로 갔더라, T는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따듯해지긴 했어. 


좋은 분이었지만 언니 사람이 아니었을 뿐, 그러니 놓아야지. 아무리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도 상황이나 타이밍이나 이런 것들은 또 다른 문제니까.


응, 


어제는 잠들기 전에 좋은 생각을 하면 다음날 컨디션이 좋다는 말을 들어서, 파아란 하늘 아래 귀여운 양들이 풀을 뜯어먹는 초원을 생각했다. 텐트 안에 누워 어김없이 메이를 불렀고, 그녀는 달려와 나의 왼쪽 팔을 정성스레 주물러주다가 나의 겨드랑이 아래쪽에 포옥 파묻혀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아직 겨울이고 아직 추웠다. 나는 그녀의 체온에 감사하며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고 싶지 않았음에도 결국 나는 꿈을 꾸고 말았다. 


    J는 우리 집에 놀러와 있었다. 나의 가족이 있는 집이었는데 그는 다른 누군가와 거실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먹고 싶어 부엌에서 냉장고를 뒤졌는데 결국 찾아 먹었는지는 기억이 끊겼다. 그 후 나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었는데 그가 들어와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놀렸고, 우리는 치약 거품이 가득 묻은 채로 몇 번의 스킨십을 나누었다. 개찰구에서 우리는 헤어졌는데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내가 너 먹여 살릴 테니 아무것도 걱정 마'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잇몸이 환히 보일만큼 그는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역은 갑자기 꿈틀대더니 경사가 아주 급한 오르막으로 바뀌었고 구두를 신은 나는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반대쪽에서 다시 나타난 그가 나를 끌어주어서 나는 계단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을 위해 작별인사를 했다. 


    안면도가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언젠가 안면도에서 커다란 돌게를 돌멩이로 쳐 죽인 적이 있다. 고의는 아니었고 나도 무서워서 그랬던 건데 아직도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 안개 낀 바다가, 축축했던 모래밭이, 빗물이 첨가된 맛없었던 컵라면이 생각난다. 뜬금없이 K는 나의 예전 이름을 불렀다. Y는 새삼 너의 예전 이름이 생각이 안 나고, 지금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S로 살았을 시절, 내가 E가 되었다고 해서 S가 사라진 건 아닐 텐데. 종종 나는 S가 죽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과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나는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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