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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Jan 18. 2017

나는 어떤 눈송이야?

당신은 아주 예쁜 단 하나의 눈송이였는데

나는 나 스스로의 세대주이면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적응을 한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기세와 가스비가 계좌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어떤 것이 조명을 켜 두었던 시간들이고 또 어떤 것이 요리를 해 먹고 온수를 켰던 시간들인지 매번 구별이 안되고, 그 시간들이 숫자로 바뀌어 내게 청구되는 것이 언제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국전력공사와 코원에너지중에 어떤 것이 전기고 가스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오늘은 계좌를 이동하기 위해서 양쪽의 고객센터에 여러 번 전화를 했다. 나의 전기세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어서 다음 달에 합산이 되어 청구될 거라고 했다. 가스회사 상담원은 내게 이미 카드로 내고 있기 때문에 카드사에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결론은 내가 하려고 했던 어떠한 목적 자체를 잊어버렸고, 해결이 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나는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은희경 작가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정신없이 읽고 있다. 주인공들이 꼭 나 같았다. 내가 그 모든 주인공들이 한 번씩 되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장이, 단락이, 챕터가 지날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그는 하늘색 계열의 동그란 행성들이 매달린 것 같은 아기자기한 팔찌를 차고 있었다. 그는 아이같이 배시시 웃으며 그 팔찌를 사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잘 어울려 보여서 나도 그를 따라 배시시 웃었다.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자동차 사고, 핏물, 핏덩이, 붉은색 액체들이 보였다.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던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나로 인해 운전자가 뭔가를 치었다고 소리를 빽질렀다. 누군가를 깔아뭉갰다고 말했다. 사람을. 나는 어떤 여자와 함께 내려서 사고 현장으로 가까이 갔는데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악몽을 꾸는 여인이 된 걸까.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나는 나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까 봐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고 내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과하게 아주 과하게 끌어안고 있다. 상처가 아물 때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다. 혼자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도, 그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꼭 필요한 시간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오지 않는 버스를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마침내 버스는 나를 향해 달려왔고, 나는 노란빛이 켜진 내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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