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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Jan 13. 2017

그녀와의 대화

내가 나를 잃고 잊고 울고 다시 기억해내고

지금으로부터 약 3년 3개월 전, 나는 나와 너무나도 닮은 것 같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었다. 내가 쓰고 말했던 문장들이 다시 읽어보니 정말 내 생각으로 쓴 문장인지 내가 했던 말들이 정말 맞는지 묘한, 이상한, 슬프고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기억해내고자.



    모리셔스에 있었던 그녀는 내게 너무 우울하다고, 두바이에 있었던 나는 매일 불안하고, 매일 꿈을 꾸고, 매일 웃다가 운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그냥 이렇게 불안정한 인간형인가 봐'라고 했고 나는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그녀는 'hope you are happy it and i am happy to hear that!'이라 말했고, 나는 그저 또 떠다닐 뿐 빨리 어디론가 달이 지듯 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두바이의 2년 동안 이방인 같던 삶을 서서히 정리하고, 빠른 시일 내에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즈음에 결혼을 한 그녀는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남편에게 투정을 내내 부리다가, 끌로에처럼 시 한 편이면 된다고!!라고 했다고, 그래서 남편이 그다음 노래 한곡을 보냈는데, 듣다가 펑펑 울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나를 끌로이 너는 이해하겠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끌로이 끌로이- 하고 불렀다. 예쁜 미소를 담은 얼굴로. 나도 '아마 죽을 때까지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라고 했다.

    그녀는 다들 머리를 지구에 두고 사는 것 같다고 했고, rock mountain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언니처럼 나사나 돌멩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이 실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엉켜있는 실뭉때기. 그녀는 내게 실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은 사실 나뭇가지라고, 건조해지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물이니까 비를 내려주겠다고, 비를 많이 뿌려줄 테니 마르지 말라고.


    나는 말했다. '요즘 나는 언니, 아무것도 모르겠어 앞으로 또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겠다 싶다가 또 다른 성질의 인간을 만나면 내가 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내가 정상으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라고 했고,

    그녀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날 이해받는다고 첨엔 느낄지도 몰라, 정말 우주가 하나로 만들어주는 느낌을 느끼기도 하고 정말로 모든 기운이 이끌어주는 차원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난 끌로에가 그걸 느낀 후에, 그걸 느끼게 해주는 사람을 만난 후에, 좀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왜냐면, 그런 사람 역시 너무 나약하니까 난 그 나약함을 너무 사랑할 테고 그럼 그 연인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인들처럼 서로 만을 너무 사랑해서 지옥에 머물 거야. 그 사랑 말고는 모든 게 슬픔이라 지옥에 보내지겠지'라고 말했다.



[끌로에] [오전 10:59] 

결혼은 사랑에 한 발자국 물러나 있을 거고, 항상 사랑을 찾으려고 하다가 난 지옥에 떨어질지도 몰라

[끌로에] [오전 11:00] 실체 없는 무언가를 찾으려 허구한 날 헤매다가 

[끌로에] [오전 11:00] 평범해 보이는 채로 주저앉는 미래는 생각하기도 싫어


[그녀] [오전 11:00] 지옥에 가도

[그녀] [오전 11:00] 사랑을 하겠어

[그녀] [오전 11:00] 까미유처럼

[그녀] [오전 11:01] 평범해 보여도 눈동자에 우주를 담고 싶다


[끌로에] [오전 11:02] 후후 언니다워

[끌로에] [오전 11:03] 까미유 영화 봤어?

[끌로에] [오전 11:06] 언니랑 얘기하고 있으면 잠깐 다른 차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말 신기하지

[끌로에] [오전 11:09] 제페토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끌로에] [오전 11:09] 피노키오들을 만들어내고 싶어


우리의 대화를 읽으면서, 따듯해지다가 울음이 날 뻔했다. 내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왜 피노키오들을 만들어내고 싶었을까? 저기 말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나였을까, 꼭 모르는 여자 같았다. 


'외로움이 공유되면 외롭지 않아'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보내주었고, 그녀는 너무 좋다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이어 나는 전혜린 얘기를 하며, 그녀가 일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행운을 가진 아이라고 했어. 나는 일요일에 태어나서 일요일에 죽을까 해,라고 했고 그녀는 웃었다. 그다음 나는 심보선의 '의문들'을 써 내려갔고, 그녀는 김경주의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종료되었고 다른 차원의 문은 잠시 또 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대화중에 사실 이건 내가 쓴 말임에도 내가 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끌로에] [오전 10:21] 심보선의 시집에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 빌려온 유일한 단어'라는 문장이 나와.

사랑이란 신의 일일뿐, 인간은 그저 흉내만 내고 있는 건지 몰라. 그럼에도 애타게 사랑을 원하는 건, 삶이 한 번뿐이기 때문일 거야. 언제 또다시 이 별에 태어나,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울렁이게 시작하는 하루다, 아직 정오도 맞이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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