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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Jan 26. 2017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커서 토끼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14

    그는 비눗방울 총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어린이 대공원에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도 현실보단 환상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그의 몸에 귀를 대면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군일 때 사람 홀리는 달을 봤다던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를 잘 알지도 못한 채로 헤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름마저 까먹었다. 하지만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와, 거리,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나와 너무 비슷한 모습에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고 말았던 그 늦은 여름. 그는 어렸을 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저는 커서 토끼가 될래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아마 언제라도 종종 생각이 날 것 같다.

 

2017

    어제는 최근 꾼 꿈 중에 가장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실 스토리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아주 커다란 박물관에서 수많은 그림들과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동물 또는 식물에 관한 것들이었다. 가족과 예전 직장 동료와 친구들과 옛 연인들이 내 꿈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내 꿈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와 그들은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았을까

    나는 아홉 살로 끝나는 해마다 큰 변화가 있는 사주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올해 다른 해보다도 더 다이나믹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석해도 될까? 기대를 가지고 명랑하게 살고 싶다가도, 아니야 그 뒤로 분명히 따라올 실망감에 나 스스로를 죽일지도 모르니까- 하고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다. 내게 황홀을 전해주는 순간들은 너무나도 짧고 짜릿해서 나는 내가 고혈압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는 저혈압이었다. 가끔 사람이 아주 많은 공간에서 산소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주저앉아 나는 느껴보는 것이다. 나의 심장이 심전도 그래프의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아주 느린 박자로 넘어가고 주--우---ㅇ욱ㅜㄱ 늘어지면서 모든 것이 '땡!' 하고 정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내겐 꼭 우주에서 헤엄치는 것 같고, 애초에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대체적으로 평온하고 또 평온하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을 놓아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제로의 세계로 막 진입한 신생아같이 나는 하품을 하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멍하니 두 눈을 껌벅거렸다. 시야는 검정과 오색찬란한 빛으로 반복되더니 끝내 하얗게 바래버렸다. 예전부터 나는 꿈이 무엇이냐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해왔다. 정작 나 스스로의 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최근에 내게 되물어 오는 질문에 2014년의 그의 대답을 빌려, 나는 커서 토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며칠 전, 겨울에 태어난 I를 만났다. 올해 자신은 기다리는 해로 지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특히나 기다림에 취약한 나는 기다림에 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올해가 끝날 즈음에 다시 만나면 기다리는 너의 해는 어땠냐고 물어봐야지. 나도 그쯤에는 기다림에 의연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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