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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Feb 24. 2017

새벽에 일어난 이야기

기록해두었던 것들

                                                                                                                                               

1.

나는, 섬에 있었다. 고양이가 아주 많은 섬에 있었다.

분명히 이건 악몽이었다. 반나절이 지난 후 다시 기억해보려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2.

Y와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같았다. 저쪽에서 커다랗고 딱딱한 등껍질을 가진 거북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거북이는 나란히 걷던 우리 사이로 엉금엉금 지나갔는데 Y의 무릎 쪽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Y의 무릎 쪽 살점은 떨어져 나가 있었고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했다. 그 상처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그 미친 거북이가 Y를 물고 간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Y와 자전거를 타다가 그녀가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부러져 놀라고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고 또 울었던 트라우마가 있던 터라 꿈 속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라 펑펑 울었다. 아파하는 Y의 상처에서 피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나는 두 손으로 그 구멍을 막으면서 그리고 엉엉 울면서 119에 신고를 했다. 그러다가 나는 꿈에서 깼는데, 해몽을 찾아보니 동물에게 물리는 꿈은 특히 거북이라면 굉장한 길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꿈이길래 나는 Y에게 꿈 얘기를 해주었고 그녀는 내가 오늘 면접 가는 걸 어찌 알고 그런 꿈을 꾸었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합격! 나 이제 직장인이야 ㅋㅋㅋ'라는 문자를 받았다.

기뻤다. 우리는 나중에 태몽도 서로 꿔주겠구나 싶었다.


3.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길고 아득하게 느껴져서 순간 어지러움증이 유발됐다.

대개 시간이란 지나고 나면 짧다고 느껴지는데, 나는 너무 길었던 것 같고 혹 다시 살라고 하면 싫어!라고 말해야지 했다. 그만큼 나는 치열했고 바닥과 천공을 치는 감정들을 수용하느라 벅찼던 거라고 생각한다. 뭐 앞으로야 더하면 더하겠지.

    

    중심축이 이동함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깊은 곳에 무언가를 들여놓는다는 것은 송뚜리채 뿌리가 뽑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순간에는 그저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모든 게 박살이 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불안감과 황홀감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눈을 반짝이고 미소를 짓고 하늘을 바라보고 숨을 내쉬고 뱉는다. 현실과 나를 잊고 도취한 채 움직임 없이 외계(外界)와의 접촉을 단절하는 일은 짧고 슬프며 아름답지만 놓치기 싫다. 단 일 초라도 좋다.


    확신이야 말로 불확실함의 온상이며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의 어떤 것에도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확실한 꿈을 꿀 것에 대한 의지가 있다. 강박적인 두려움과 감정들의 기록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다.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다. 식욕도 물욕도 덜어내고 싶다.


4.                                                                                                                                        

파스칼은 인간의 위대성을 놓치지 않았다. 인간은 갈대처럼 약한 존재이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

그는 뒤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가 그를 짓눌러버릴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한층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들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정신은 그들에게 비참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다시 말하면 비참함을 자각하는 인간이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비참함을 아는 자'


5.

나는 나의 고질적인 소멸과 생성의 욕구를 상대하느라, 끊임없이 틈만 나면 나 스스로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 터널 새


6.

가능한 한 머무르자, 그리고 제한된 자아를 고요히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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