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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Mar 13. 2017

결혼식과 안개 낀 서울

에서의 기록

주말

많은 일들과 감정들이 스쳐갔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고 명랑한 나를 지켜내고 싶었으며 우울함 앞에 더욱 뻔뻔할 수 있기를, 아이 같기도 노인 같기도 한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를 바랐다.

저녁 6시, 15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는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며 무뚝뚝하게 있더니 정작 식 중에 펑펑 울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낮 12시 반,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K를 만나서 식사를 했다. 나는 언제나 K에게 솔직할 수 있어서 너무 편했고, 또 그는 나를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어서 우리의 대화는 거의 날것에 가까웠는데 그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넌 정말이지 나보다도 훨씬 오래 살 것 같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넌 언젠가 아이를 낳아 정말 잘 키우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를 좋은 유치원에 보내고 유기농 음식을 먹이면서 적극적인 엄마가 되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유해졌다고, 세상과 많이 타협했구나? 하며 웃었다. 나는 저주를 하는 거냐고, 나의 2세는 결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친구 아버지가 결혼하는 친구와 사위를 바라보며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라. 잘 성장해주어 고맙다-는 주례사를 할 때 나도 나의 아빠가 자꾸 떠올라서 뜨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난 참아야만 했다. 터지면 멈출 수 없을 것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나는 나의 아빠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는 쪽으로 애써 노력했다. 꼭 아직 옆에 살아있다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은 채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하고 또 미안하고 속상하고 그리운, 나와 닮은 나의 아빠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결코 슬프지 않았으나 혹여라도 울음이 터질까 하여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생각들을 잠시 멈춰야 했다. 반짝이는 조명과 투명한 유리에 가득 담긴 수국들을 바라봤다. 커다란 스크린에는 그녀를 위한 그의 영상이, 무대 가운데에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친구가 감동에 젖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또 다른 친구는 빨리 자신도 결혼을 하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굴렀고, 나는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언젠가 훗날 만약 결혼을 한다면 나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존경하는 또 다른 아버지가 내게 잘 살라고 얘기해주겠지. 나도 감동에 감동을 하며 나의 레논을 바라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나의 아빠가 그리워서 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 그 유한성을 한계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이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그런 것들은 최대한 늦게 알았어도 좋았을 텐데.


    안개로 뒤덮인, 미세먼지의 세계. 차가 없는 도로 터널을 지나 N을 지나고 우연히 I로 왔다. 추억들이 범벅이 된 거리를 그와 걸었다. T의 공간 근처에 발을 디뎓을 때 나는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지만 그 전날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생각을 멈추고, 건물을 사람들을 나무를 쇼윈도를 내 옆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아무렇지 않아져 버려서 더욱 먹먹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 뜻대로 되었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었다. 사진도 찍었다. S로 이동해서 우리는 뿌연 하늘 아래 짠 어묵을 먹었다.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얘기도 적지 않게 나누었다. H를 통과해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집에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정말이지 완벽한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주 잘 살아 있었다. 이렇게 일요일이 <끝>이 났다.

욕심이겠지만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되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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