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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Mar 10. 2017

어떤 영화

체리 나무

확신이란 게 어디 있냐? 볼 수 있어? 그렇게나 확신했던 것들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볼 수가 없는데. 한동안 잠잠했던 반항심이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언제나 나는 99에 머물다가 잠깐 방심하면 100도로, 나도 나 스스로를 말릴 수 없는 감정적인 인간으로 돌아가고 만다. 세상이 내 편이라 믿고 살았던 긴 평화를 박살 내버린 순간들을 기억한다. 내가 이렇게 바뀌게 된 모든 계획들을 저주하고 싶다. 어떻게 누군가를 믿어? 서운함이 실종된, 만족으로만 가득한 타인과의 관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내가 너를 바꾸고 싶냐고? 나는 나 자신도 바꿀 수가 없다. 내 생일에 결혼을 하기로 한 친구는 드레스 샵을 종일 돌아다닌 얘기와,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대화창에 열심히 팁을 적어 보냈지만 나는 9월에 있을 결혼식을 3월부터 준비하고 있는 그 사실 자체가 놀랍고 기묘하고 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가능한 한 기존의 범위에서 부디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디 내가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복잡한 꿈을 꾸었다. K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해서 나는 그를 만나러 나가는 길이었는데 골목을 빠져나가자마자 불빛이 번쩍이고 수많은 남녀들이 짝을 이루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나도 누군가와 짝을 이루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는 것 같았으나 나는 몰입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로 또 이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야속하다. 체리나무를 빨리 심어야겠다. 모든 것이 끝장이 나기 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고,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을 읽었다. 봄에 가을의 음악을 듣고 있다. 막스 리히터의 어텀 뮤직 1이다.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면서 어느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면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텨갈 자신이 없다.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젊은 날,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나는 책장을 넘긴다. 앨리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멈춰버린지 꽤 오래되었다. 결국 앨리는 앨리를 찾지 못했다로 끝나게 되는 걸까. 검은 앨리와 흰 앨리가 만나 M의 색으로 침착하게 가라앉기를 바랐는데 내게 침착이란 죽음의 느낌에 가까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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