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울 삼촌이라는 로망...
기차역으로 오기로 한 그들의 엄마는 꽤나 늦었다.
그녀가 생각한 도착 시간은 타고 내리는 걸음 시간을 제외한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개찰구 통과하는 시간도, 화장실 들르는 시간도 제외했을지 모른다. 지루한 우리는 역을 하염없이 걸어다녔다.
역에서 파는 진귀한 물건과 많은 사람들. 커피를 들고 서둘러 가는 사람, 캐리어를 끌며 천천히 걷는 사람,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멈춰 서 있는 사람. 생기 있는 공간…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삼촌, 저희 잃어버리지 마세요!"
오늘 내내 당당했던 남자조카가 소리쳤다. 수초 만에 우릴 스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 어른 없이도 다 할 것 같던 어린이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엔 처음 듣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
"응, 삼촌은 너희 안 잃어버려."
쇼핑몰에서도 내내 책을 읽던 그가 처음으로 여동생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더 작은 손을 꼭 쥐었다.
"그래도요."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말했다.
"그리고 잃어버려도 삼촌 번호로 전화 걸면 되지. 걱정 마."
"삼촌, 제 폰 고장 났어요."
아차. 이제야 그의 불안을 알았다. 서울 오기 며칠 전 그의 폰이 고장 난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조잘조잘 가족 단톡방에서 떠들던 그가 조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도 안 찍고, 영상도 안 찍던 것이었다.
나는 얼른 그들을 대합실 빈자리에 앉혔다. 붐비는 기차역에 세 명분의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큰아이를 앉히고, 그 무릎에 작은 아이를 걸치고, 나는 서서 보초를 서 있었다. 여자조카는 오빠 무릎에서도 파우치를 열어 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큰아이는 손으로 여동생을 감싸 쥐고 책을 다시 펴고 있었다.
"근데 우리 돼지고기 먹어요?"
아까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했던 큰아이가 물었다.
"응, 돼지고기 맛난 데 있대서 거기 갈 거야."
"거기 김치찌개 있어요?"
또 김치찌개라니? 나는 "아마도 있을걸?"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내일 점심도 특식보단 김치찌개가 되어야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엄마!!!"
갑자기 몇 시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를 이렇게 반갑게 불러본 적 있었나. 아이들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여자조카는 파우치를 떨어뜨릴 뻔했고, 남자조카는 책을 겨우 가방에 쑤셔 넣었다.
누나는 피곤한 표정을 애써 웃어 보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잘 있었어? 삼촌이랑 재밌었어?"
이 물음을 묻는데, 나는 뜨끔했다. 내가 재밌게 해준 건 없는 것 같은걸. 가오레에서도 구경만 했고, 서점에서도 그냥 책만 사 줬고, 무인양품에서도 그냥 앉아만 있었는걸. 특별한 체험도, 신나는 놀이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크게 소리쳤다.
"네! 재밌었어요!"
아이들에게 처음 고마웠다.
"고생했어. 애들이 말 안 들었지?" 누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아니, 착하게 잘 놀았어." 나는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