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2022.11.20.

by 윤윤

오늘은 일요일이다. 하나님도 6일 동안 일하시고 7일째에는 휴식을 취하셨다는데, 하찮은 훈련병인 우리들도 그러하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지만, 역시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잠을 날려주는 싱그러운 기상나팔 소리. 오늘은 그래도 일요일이라 그런지 지렁이 댄스도 없었고, 아침 점호도 간단히 인원과 환자, 기타 특이사항만 체크하고 넘어갔다. 아침식사는 무난한 밥, 국, 김치, 고기가 나왔는데, 어제의 충격적인 빵식보다는 훨씬 나았다.


원래 일요일 오전에는 훈련병 개개인이 선택한 종교를 따라 종교행사를 참여해야 하지만, 아직 격리기간인 지라 종교행사는 다음 주를 기약하기로 했다. 세면을 마치고 오랜만에 늘어져서 쉴 수 있나 하고 관물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오전에 할 일은 각자 자신의 관물대 안에 있는 CS복(훈련용 전투복)을 입어보고,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맞을 때까지 분대원들과 잘 돌려서 입고 사이즈가 맞는지 분대장님들에게 검사를 받는 일이었다.

비록 우리 기수가 전체가 다 보충역이었지만, 우리 분대에는 의외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많아서 체격이 건장한 친구가 많았다. 대한민국 남자 평균과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는 키도 조금 더 크고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갔다. 미리 관물대에 배치된 옷들은 역시 우리의 몸뚱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작은 사이즈가 많았다. 나도 체격이 있고 특히 하체비만형이라 예전에 내 관물대를 썼던 사람이 남겨 놓은 옷을 입어보니 상체는 맞았는데 하체, 특히 허벅지가 껴서 입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행히 나보다 체격이 작은 다른 분대원이랑 바지를 교환하여 바지를 입을 수는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불행하게도 맞는 옷이 없었다.

한바탕 소란이 대충 끝나고, 다들 전투복을 입은 상태로 대기하고 분대장님들이 돌아다니면서 사이즈가 맞나 검사하셨다. 나는 적당히 통과가 되었는데, 다른 분대원들 중에 사이즈가 작아서 차마 옷을 입지 못한 친구들에게 분대장님이 입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입어보라고 하셨다. 그중 한 명이 바지를 입는데 엉덩이 쪽까지 바지를 올리고 지퍼를 잠그려고 하자 바지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분대장님이 이건 아무리 해도 안 되겠다며 씩 웃으시고는 방을 나가셨다.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는 옷이 맞지 않았던 인원들이 어딘가에서 가져온 더플백(아마 다른 중대나 의류창고였을 것이다)에 들어있는 옷들을 꺼내서 맞는 옷이 나올 때까지 갈아입는 것을 반복했다. 아쉽게도 분대원 중 한 명은 열심히 옷을 골랐지만 남아있던 바지 중 제일 큰 것이 지퍼까지만 잠기고 단추는 잠기지 않았다. 분대장님은 그래도 괜찮아도 입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다. 이게 바로 군대에서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마법이리라.

전투복 사이즈를 볼 때 특이한 점은, 기장 사이즈와 통 사이즈가 이원화되어 표기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의가 95-173, 105-183, 110-178 같은 표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사이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쌓인 옷들 속에서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분대장님들이 CS복은 입을 수만 있으면 괜찮은 거라고 하셨나 보다. 맞는 옷 찾는다고 하루 종일 의류대를 뒤지는 것도 한숨 나오는 일이니......

CS복은 어차피 여기서 훈련할 때만 입고 말지만, 훗날 불출받은 A급 전투복(새 옷을 지급받고, 집에 가져가서 예비군 때도 사용한다)은 사정이 달랐다. 새 옷을 몸에 맞을 때까지 모든 훈련병이 돌아가면서 입어보는 것은 시간낭비인 일이니까. 그래서 국방부는 이 문제에 대한 묘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바로 각 훈련병마다 키와 몸무게를 적어서 제출하고, 그에 맞는 과학적(?) 수학적(?)인 계산을 통하여 어떤 사이즈의 옷이 적당할지 지정해서 상하의 와 방상외피를 불출해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생각되지만, 몸무게가 상체나 하체 중 한쪽으로 쏠린 사람들에게는 사이즈가 조금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상술하였듯이 하체 쪽으로 몸무게가 쏠려 있어, 나중에 A급 전투복을 지급받았을 때 바지는 약간 딱 맞는 느낌이 들었고, 상의는 조금 헐렁했고, 방상외피는 평소에 입던 것보다 통이 두 사이즈는 커서 안에다가 방상내피(깔깔이)를 여러 벌 껴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컴퓨터(엑셀)의 계산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는 그 이후 사이즈 교환의 기회가 주어져, 다들 CS복보다는 더 만족한 사이즈의 옷을 받을 수 있었다.


남은 오후 시간은 이발의 시간이었는데, 아마 보충역 훈련병들에게는 훈련기간 중 최고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훈련이 끝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보충역들에겐 여기서 머리를 한번 더 잘리느냐 보존하느냐가 앞으로 몇 개월의 머리 스타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게 된다. 나도 훈련소에 들어오기 전 머리를 자르고 왔지만, 입소 전날 친구들이 머리가 긴 거 같기도 하고 갸우뚱한 반응을 보여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소대장님이 우리 분대에 들어오셔서 이발 후보를 선발하셨는데, 총 16명 중 4명이 선발되고 나에게는 "음, 애매한데......"라는 운을 띄우셨다. 그 말을 들은 짧은 순간 나는 미래로 향하는 두 갈림길에 대하여 수많은 고뇌와 번민을 거치다가 입에서 뇌보다 빨리 "자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말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머리는 라운지에 넓게 장판을 펴놓은 상태에서 이발병이 잘라주셨는데, 이발 도구 중에 가위는 없고 오로지 바리깡으로 모든 이발을 실시했다. 길이가 10mm라고 하셨는데, 자르고 보니 더 짧은 느낌이 들었다. 엄지와 검지로 머리카락을 잡아보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생활관의 구성은 11명의 생존자와 5명의 빡빡이가 되었다.


이후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는데, 그전에도 짧은 머리를 해서 머리를 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머리카락이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 머리 감는 일은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다. 심지어 샴푸를 쭉 짜서 머리에 대고 문질러도 마치 맨살에 문지를 때처럼 거품이 거의 나질 않았다...... 당분간 샴푸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머리 부분이 유난히 시원했다. 그리고 몇 번 머리를 문지르니, 머리에서 물기가 싹 사라졌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제같이 마피아게임을 시작했다. 배려심 깊은 사회자가 머리 짧은 사람들 위주로 마피아를 지정해 주었고, 그에 따라 빡빡이들끼리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생존자들을 처단하려는 텔레파시가 통하나 싶었으나, 오늘은 생각보다 저녁 점호를 일찍 실시해서 게임 한 판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취침시간이 되어버렸다. 아쉬웠지만, 빡빡이의 복수는 오늘로 끝나지 않음을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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