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

2022.12.01.

by 윤윤

간밤에 불침번도 없이 꿀잠을 자고 일어나 별생각 없이 기지개를 쭈우우우욱 켰다. 팔과 복부 근육이 나 아직 아프다고 살살하라고 속삭였다. 오늘은 훈련이 있으니 조심해야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아침점호를 하러 나가니 아침의 한기가 나를 반겨줬다.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졌는지 귀마개를 해도 귀가 시려우니, 이제 정말 겨울이 왔구나.

아침점호 때 각 중대별 인원 보고를 하는데, 11, 12중대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줄어 있었다. 코로나검사에서 한 명 양성이 나오면 그 분대 전체를 격리하기 때문에 실제 확진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격리되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점호 이후에 우리 중대 쓰레기를 가지고 쓰레기장에 갔는데, 어제 쌓아놨던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여기 쓰레기장을 담당하는 군무원이 코로나에 걸려서 배송이 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우린 꿋꿋이 쓰레기더미 위에 우리 쓰레기를 던져 쌓았다. 던질 때 팔이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오늘의 일정은 각개전투(1일차)이다. 오늘은 각개전투의 개요와 기본, 포복 등의 동작을 배우고, 내일은 종합각개라고 하여 배운 것을 실전처럼 응용해 코스를 통과해 본다고 한다. 각개전투는 각자 개인의 전투라는 뜻으로, 병사 개개인이, 혹은 분대 단위로 지시에 따라 포복과 약진을 병행하여 적을 무찌르거나 목표지까지 도달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현대전은 중세까지와는 다르게 장갑이나 방어구보다 총포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하면서 부대의 대형을 갖추는 것보다 산개하여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이 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실제 전투 환경과 비슷한 각개전투가 훈련소에서 배우는 것 중 실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입소하기 전부터 각개전투할 때는 팔꿈치와 무릎보호대가 필수라고 들어서, 와이프님이 미리 전투복 내에 착용할 수 있는 보호대들을 챙겨주었다. 환복 할 때 보호대도 차고, 어제 지급받은 전투복 밖에 착용하는 팔꿈치와 무릎보호대를 배낭에 챙기고 훈련장으로 출발했다. 오늘 훈련장은 그래도 비교적 생활관에서 가까워서, 가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훈련장에 도착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옆 훈련병의 배낭과 기대어서 내 배낭을 내려놓고, 어제 지급받은 보호대들을 착용했다. 날이 매우 추웠다. 귀마개와 돌격장갑을 착용했는데도 귀와 손이 너무 시려워서, 챙겨 온 핫팩에 계속 손을 비비고 있었다.

모든 인원이 도착하여 정렬한 이후, 각개전투에서 수행해야 할 포복을 배웠다. 포복의 종류는 낮은포복, 높은포복, 응용포복, 후퇴포복이 있었고, 소대장님의 명에 따라 분대장이 나와서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구분동작으로 보여주는데, 동작이 매우 절도가 있었다. 역시 이정도는 되어야 분대장을 하는구나. 방금 본 것을 훈련병들도 따라 해보았는데, 마음과 같이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나도 분대장님처럼 포복동작을 반복하여 전진해야 하지만, 어째 움직여도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가 않는 것이, 옆에 기어가는 지렁이가 더 빠를 것 같았는데, 아 내가 지금 지렁이처럼 움직여야 하는구나. 깨달음을 얻고, 영차영차 하나둘하나둘 하다 보니 기어갈 수 있었다. 포복동작을 할 때는 움직임의 지렛대를 주로 팔꿈치와 무릎으로 하게 되어서, 보호대를 이중으로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그런데 이젠 배가 당기네. 어제의 후유증이다.

한바탕 지렁이놀이를 한 이후 다시 정렬했는데, 어째 해가 떴는데도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바람이 세져서 다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소대장님과 분대장님들도 추위를 참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소대장님은 구국의 결단을 내리셨다. "자 우리 코스 한 번만 타고 들어가자! 잘할 수 있지?" 모든 훈련병들은 오랜만에 한마음 한뜻으로 크게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각개전투 코스는 한 번에 열두 명이 각각 수 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동시에 진입할 수 있는 길로 설계가 되어있는데, 중간중간에 장애물들이 있어 그것을 극복하면서 가야 했다. 12열로 줄을 맞춰 서서 앞에서부터 한 오씩 코스 진입을 시작했는데, 각 오마다 소대장님이 무작위로 지정해준 사람이 분대장 역할을 하였다.

코스에는 단계마다 팻말이 적혀 있었고, 진행방식은 이를테면 첫 번째 단계가 언덕이었는데 분대장이 "저기 저 언덕이 보이는가!" 하면 같은 오의 다른 훈련병들이 "보입니다!"라고 복창하고, "언덕까지 약진 앞으로!" 하면 "약진 앞으로!" 하고 복창한 이후 으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열심히 총을 들고 뛰어서 목적지 거의 직전까지 도달한 이후 엎드려서 포복으로 전진하여 목적지에서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한 단계였다. 이를 각 단계마다 반복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가야 했다. 이 훈련장에 있는 장애물은 사다리가 걸린 철조망,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통로 등이 있었는데 역시나 기는 통로 앞은 흙이 푹 파여있어 거기에 물이 고여 있었다. 날이 추워서 고인 물이 얼어있는 곳도 있고 반쯤 얼은 곳도 있었는데, 통로를 통과하려면 옷과 총에 물과 진흙이 묻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줄을 서서 대기하며 이걸 어떻게 해야 그나마 흙이 덜 묻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소대장님이 역시나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겨울철에는 날씨가 추워 물이 묻으면 감기가 걸릴 가능성이 높으니 그 장애물은 그냥 피해서 돌아가라고 하셨다. 정말, 춥긴 하지만 여름철에 훈련소에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코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다리로 어떻게 뛰나 걱정했는데, 막상 코스를 들어가니 나 말고 다른 훈련병들 중에도 다리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천천히 뛰어도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으아아아 하는 것이 바보 같기도 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러 명이서 같이 하니까 다 같이 한 목표를 향해 뛰는 것에 힘이 되었다. 원래 바보짓도 같이 하면 재밌는 법이니까. 소대장님의 말씀으로는 각개전투에서 으아아아 하는 것은 실제 전투에서도 우리 부대의 기세를 올리고, 적 부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모두 코스를 한 바퀴 타고, 다시 배낭을 챙기고 정렬을 해야 했는데...... 내 배낭이 사라졌다. 배낭들이 당연히 다 똑같이 생기긴 했지만, 아니 어떤 녀석이 자기 것인지 열어서 확인도 안 해보고 가져갔나...... 웃긴 것이, 나 말고 우리 분대의 다른 친구 하나도 자신의 배낭을 도둑맞았다. 나쁜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역시 이래서 보충역 훈련소인가. 내 것 안에 트윅스 넣어놨었는데. 아아...... 그래도 배낭을 잃어버렸다고 정렬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우리 분대의 또 다른 피해자 친구와 땅바닥에 있던 배낭들 중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개의 배낭을 하나씩 나눠 들었다. 그런데 내가 든 배낭은 커버가 없네. 원래 내 가방엔 커버가 있었는데. 이 도둑놈은 어떻게 커버가 있는 가방과 없는 가방을 헷갈려서 가져갈 수가 있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터덜터덜 생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다른 피해자 친구는 잃어버린 트윅스와 이클립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어떻게 이놈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맛없는 점심을 먹으면서 잃어버린 트윅스가 자꾸 생각났다. 다른 피해자 친구는 약간 다혈질이어서 다른 생활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색출하겠다고 했지만, 너무 비효율적이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결국 라운지에 보고해 가방이 바뀐 사람을 찾아달라고 말씀드렸다. 물론 가방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오후 시간에는 각개전투 이론에 대한 실내교육이 있었다. 오전과 오후가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그래도 따뜻한 생활관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휴식시간에 부식이 많이 나왔다. 이번주 월화수동안 밀렸던 부식을 한 번에 나눠줘서, 마실 음료수만 500ml 페트로 세병이 되었다. 우리 분대 냉장고도 꽉 차서, 이 음료수들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포카리스웨트, 콜라, 몬스터가 있었는데 우리 분대 에너지음료광에게 몬스터를 던져주고 탄산광에게 콜라를 던져주었다. 과자들도 받을 때 보통 박스 단위로 받아서, 먹을 것이 넘쳐났다. 우리 분대원들은 자기들끼리 물물교환을 하거나 자기들의 과자를 걸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몰아주기를 했다. 이제 트윅스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오늘 저녁에 쓰레기가 넘쳐나겠지.

잠이 오던 교육 이후에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이는 훈련과 생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부조리가 있지는 않았는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는지, 혹시 칭찬하고 싶은 간부나 조교가 있는지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 딱히 부조리를 겪은 것은 없었고, 개선할 점에는 밥을 맛있게 해달라고 썼다. 그리고 누구를 칭찬할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옆자리의 친구들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우리 생활관은 인기투표의 장이 되었다. 누가 누가 우리에게 잘해줬나 열심히 토론하다가 한 명에게 표가 몰리지 않도록 적당히 나누어서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벌써 설문조사를 할 때가 되었다니. 이제 나갈 때가 가까워졌구나.


저녁밥도 맛이 없었다. 과자와 음료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있었다. 나가면 무얼 먹을까 남은 일주일 동안 고민해 봐야겠다. 샤워하고 핸드폰시간 이후 쌓인 쓰레기들을 아름답게 정리해서 내일 가져다 버릴 수 있도록 구르마에 쌓아두고, 점호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다들 오늘은 야외훈련을 오전에만 해서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원래는 금지된 행위지만 취침시간에 조용한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바다거북수프 게임도 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듣고. 그러다 보니 23시가 되어 불침번을 하러 나갔다. 생활관 문 바깥쪽은 추웠다. 한 시간 동안 몸서리치다 안으로 들어오니 다들 코를 골고 있었다. 다음 순번을 깨우고 나도 잠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4일차